펭수는 지난 4월 EBS 어린이 프로그램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구독자 수가 몇 명이에요”라는 초등학생의 질문에 “헤헤”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대 버스킹, 일산 EBS 본사에서 20명 내외의 팬미팅으로 소소하게 본인을 알려가던 펭수는 9월 EBS 아이돌체육대회(E육대)에 출연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뚝딱이·번개맨·뿡뿡이·짜잔형·뽀로로 등 이미 익숙한 EBS 캐릭터들과 함께 체육대회를 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없던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고 같은 달 30일 유튜브 구독자 10만명을 돌파했다. “나 때는 말이야”라며 위계질서를 따지려는 EBS 캐릭터 선배 뚝딱이에게 “잔소리하지 말라”고 응수하는 장면은 2030세대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펭수는 언뜻 보면 초점 없는 눈에 짧은 혀로 이야기하는 어설픈 캐릭터 같지만 이면에는 그만의 탄탄한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2m에 달하는 거대한 몸과 이에 어울리지 않는 열 살이라는 나이는 보통 사회라면 조롱의 대상이 됐을 특징”이라며 “그럼에도 펭수는 스스로를 이상형이라 밝힐 만큼 자신을 사랑한다. 펭수 주변인들도 펭수의 미숙함을 질책하기보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는 말을 건넨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눌린 현대인들이 펭수의 이런 매력에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펭수의 재치 있는 입담과 주특기도 매력이다. EBS 연습생 신분으로 “김명중”이라며 EBS 사장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고 “(뽀로로랑) 화해했다. 그래도 보기 싫은 건 똑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대사는 무수한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성인들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비트박스·춤·요들송 등 펭수가 가진 다재다능한 장기도 캐릭터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그 덕분에 펭수는 EBS 소속이지만 성역 없이 방송사 문턱을 넘나들고 있다. KBS 2TV ‘연예가중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와 라디오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SBS ‘정글의 법칙’ 내레이션과 라디오 ‘배성재의 텐’, JTBC ‘아는 형님’ 등에 출연했으며 어딜 가든 ‘슈퍼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펭수에 대한 관심은 EBS의 주 타깃층인 10대를 뛰어넘어 2030세대 그 이상으로 확산했다. 지난달 EBS가 ‘자이언트 펭TV’ 구독자 100만명 돌파를 기념해 공개한 유튜브 채널 시청 연령층은 18~24세 24.6%, 25~34세 40.2%, 35~44세 21.8%, 45~54세 7.8% 등으로 폭넓게 분포해 있었다. ‘펭년배(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펭수를 좋아한다면 펭수와 동년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왜 펭수는 사랑받는 것일까. 높아진 인기만큼이나 펭수의 인기 비결에 대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영국 BBC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면서도 계급에 얽매이지 않는 점”을 꼽았다. 김명중 EBS 사장을 ‘사장’이라는 존칭 없이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이 펭수의 매력이며 겸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반항하듯 자신을 ‘슈퍼스타’라고 자랑하는 당당한 모습 역시 인기 비결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특히 2030세대에게 ‘사이다’를 선사하는 펭수의 촌철살인 코멘트와 탈권위적인 모습이 직장인의 대통령을 뜻하는 ‘직통령’으로 불리는 인기 비결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정작 진정한 펭수 팬들은 펭수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 대해 펭수의 좌우명인 “펭수는 펭수다”를 외치며 반발한다. ‘펭수는 펭수일 뿐’ 해석을 덧씌우지 말라는 것이다. 펭수는 성별을 묻자 ‘열 살짜리 펭귄’이라며 “남자 친구도, 여자 친구도 없다”고 답한다. 많은 팬들은 이 같은 펭수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존중한다. 펭수 탈 속 연기자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거나 펭수의 성별을 특정하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팬들은 11월 외교부를 찾은 펭수의 신원 확인 과정에서 펭수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로 남성인 것이 확인됐다는 농담 섞인 보도를 한 JTBC에 “성 역할을 거부하는 펭수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펭수 신원이라니? 펭수는 그냥 펭수다”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유튜브 계정은 남극에 두고 온 가족이 보고 싶다는 펭수에게 가족사진 일러스트를 선물했다. 전통적 성 역할에 따른 4명으로 구성된 가족사진이었다. 아빠와 엄마,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동생까지 있었다. 펭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저 동생 없는데요”라고 말했다. 팬들은 이러한 펭수에게 환호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펭수의 주요 팬층인 밀레니얼 세대는 ‘펭수의 정체를 캐려고 하지마’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뭘 안다고 분석해’라고 저항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며 “이는 좋아하는 이유를 애써 추출하고 규정하려는 데 대한 거부감으로 펭수를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펭수는 최근 SBS ‘본격연예 한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기 비결에 대해 “나 자신, 팬, 김명중(EBS 사장)”이라고 밝혔다. 펭수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하고 싶은 말 하면서 사시면 됩니다. 눈치 챙기시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사세요.”
/김현진·한민구 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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