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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100조 투자' 포장 뜯어보니 35조는 '포장지'?

민간 25조·민자 15조·공공 60조 투자 내세웠지만

35조는 '추가 발굴' 프로젝트...공공은 효율성 낮아

"'찔끔' 애로 해소로는 신규 투자 유도 어려워

투자 가로막는 규제 혁파하고 노동개혁 해야"





정부는 지난 19일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정부가 2020년에 펼칠 경제정책의 내용을 망라한 123페이지짜리 자료입니다. 통상 90~100페이지 분량으로 나오는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가용한 대책을 모두 끌어 담으라고 지시하면서 양도 늘어났다는 후문입니다. 총 100조원 규모 투자를 이끌어내 2.4%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게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정부 의지입니다. 소득 주도가 아닌, 투자 주도로 ‘궤도를 이탈해 있는’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우리 경제의 성장을 도모해보겠다고 하니,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하지만 100조원 투자 계획을 뜯어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상당 규모 투자 프로젝트는 민간 기업이 이미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담았고, 35조원 가량은 투자 윤곽조차 잡혀있지 않은 ‘희망사항’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정부가 제시한 100조원 투자 계획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민간 투자에서 25조원을 이끌어내고, 민자(民資) 사업이 15조원입니다. 나머지 60조원은 공공기관 투자입니다. 민간투자 25조원은 일반 기업의 투자 프로젝트를 말하는데요, 가장 큰 프로젝트는 에쓰오일의 울산 석유화학 공장 7조원 투자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지난 6월 에쓰오일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합작으로 오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밝힌 그대로입니다. 정부가 하겠다는 것은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제도가 내년 4월부터 확대 시행되는 만큼 이로 인한 투자 애로를 해소해준다는 겁니다. 환경 규제를 강화해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키워놓고, 이를 다시 풀어주면서 ‘애로 해소’로 포장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나머지 민간 투자 프로젝트들인 신세계의 인천 청라스타필드(1조3,000억원), 롯데케미칼과 한화케미칼의 여수 석유화학 시설 투자(1조2,000억원), CJ의 글로벌 전자상거래 물류센터(2,000억원), 포스코케미칼의 2차전지 소재 공장(2,000억원) 착공도 에쓰오일 사례와 대체로 비슷한 유형입니다. 투자 애로 해소는 반갑지만, 이런 식으로 불확실성에 직면한 기업에 그때 그때(case by case) 찔끔 혜택을 주며 생색내는 식으로는 새로운 투자를 이끌어내기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민간투자 계획 25조원 가운데 이들 10조원을 뺀 나머지 15조원은 아직 계획이 잡혀있지 않은 ‘발굴 대상’에 불과합니다. 이미 확정됐다는 10조원도 계획대로 집행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 서울 삼성동 현대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 시기를 올해 상반기로 예상했지만,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로운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민자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총 10조원 계획 중 확정된 건 5조2,000억원이고 나머지는 신규 발굴 대상입니다. 규모가 가장 큰 60조원 규모 공공기관 투자는 민간이 아닌 말 그대로 공공 투자이기 때문에 경기 반등 모멘텀을 만들기에는 규모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투입 대비 효과를 뜻하는 소위 재정 승수(乘數)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오히려 정부의 공공 재정지출 확대가 민간 투자를 훼방 놓을 수 있다는 지적마저 나옵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확장재정으로 공공투자가 비대해지면 민간의 조달비용을 상승시켜 투자를 위축시키는 이른바 구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문재인(오른쪽 두번째)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홍남기(왼쪽 두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정리하면, 민간·민자·공공 투자 100조원 중 35조원 가량은 ‘펑크’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지능형 공장(스마트공장) 투자에 세액공제를 확대 적용해주고, 가속상각 특례 혜택을 늘려주는 등의 투자 당근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한시적’ ‘찔끔’ 대책으로는 기업 투자를 새롭게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스스로도 투자 촉진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투자, 특히 민간 투자가 살아나야 기업이 고용을 하고 근로자들이 월급 받아 소비를 하며 이것이 또다시 투자와 고용, 소비,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세금 털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그러면 소비가 늘어 기업이 투자를 하고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게 지금 한국 경제를 ‘궤도 이탈’하게 만든 소득주도 성장의 민낯입니다. 정부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세금이 아닌 투자를 통한 민간 활력으로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고 했으니, 그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혁신, 노동개혁에 고삐를 조여보길 기대해봅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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