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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 이끌 '문샷형 R&D' 헛바퀴…사업화도 지지부진

[창간60주년 기획 -대한민국 경제 돌파구 초격차]

<3>초격차의 조건 -R&D 혁신과 인재양성

정부 R&D에 年 20兆선 쏟아붓지만…

저질 논문·특허 양산..사업화 20%

美·日같은 파괴적 혁신은 요원

기획 전문성 부족·자율성 침해 등

고질병 탈피 못하고 부처 간 장벽

산학연 융합해 시너지 효과 내야

"기초과학부터 사업화까지 절실"





1961년 5월25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이 목표를 세웠다”고 공언한다. 소련이 1957년에 최초의 인공위성(스푸트니크호)을 발사하며 안보 쇼크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아예 ‘게임의 룰’을 다시 쓰겠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약속은 1969년 7월20일(미국시간) 아폴로11호의 닐 암스트롱 등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며 실현된다. 당시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해 비판도 무성했지만 미국은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통해 과학기술 분야에서 슈퍼파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문샷은 이후 혁신적인 프로젝트의 대명사가 됐다. 구글의 비밀조직인 구글X에서 주도하는 무인자동차, 수명연장 바이오 연구, 열기구 활용 인터넷 서비스, 드론과 로봇 등을 문샷 프로젝트로 부르는 식이다.

1969년 7월20일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착륙해 실험하는 장면. In the few hours that Aldrin and Armstrong were on the Moon, there was little time to set up scientific experiments, but a small package (the EASEP, or Early Apollo Scientific Experiments Package) was deployed. Aldrin is shown here setting up the Passive Seismic Experiments Package. Back to the left is the Laser Ranging Retro-Reflector. More extensive scientific studies were done on later Apollo missions. /사진 출처=NASA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미래형 기술개발에 나서며 민간의 도전을 장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최초의 기상위성, 인터넷 전신인 ‘ARPANET’, 반도체 핵심재료, 소형 GPS 수신기, 스텔스 기술 등이 여기서 나왔다. 구글맵의 스트리트 뷰나 애플이 상용화한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비서 ‘시리’도 마찬가지다.

다르파의 심해 수중 로봇 프로그램 이미지. DARPA has awarded six contracts for work on the Angler program, which aims to pioneer the next generation of autonomous underwater robotic systems capable of physical intervention in the deep ocean environment. This class of future unmanned underwater vehicles (UUVs) must overcome reliance on GPS and human intervention to support infrastructure establishment, maintenance, and resilience over the vastness of the ocean. The Angler program seeks to merge breakthroughs in terrestrial and space robotics, as well as underwater sensing, to develop autonomous robotic solutions capable of navigating and surveying ocean depths, and physically manipulating human-made objects of interest. /사진 출처=DARPA


일본의 경우 아폴로 프로젝트와 DARPA를 벤치마킹해 연구개발(R&D) 혁신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달 기지 건설, 우주 엘리베이터, 자연재해 사망자 제로, 노인과 장애인의 신체능력 회복(사이보그), 인공 동면 등의 혁신적 R&D가 그 예다. 이민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임팩트(impact) 프로젝트에 이어 문샷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기존 조직을 넘어 융합을 통해 파괴적 혁신을 꾀하겠다는 것”이라며 “젊은 연구자들의 성취욕도 크게 자극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첨단 기술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양자컴퓨팅 등 양자기술, AI, 우주개발, 바이오·생명과학 등의 첨단 R&D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고 민간의 창업가 정신을 북돋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DARPA를 벤치마킹한 신규사업을 표방하는 등 선도자(first mover)로 나서기 위한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중심으로 R&D 시스템 혁신에도 나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올해 R&D 예산도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과제가 대폭 늘며 지난해보다 18%나 급증한 24조2,000억원에 달하지만 R&D 생태계 활성화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실례로 정부 R&D 과제(2017년 기준 약 6만3,000개)에서 너무 높은 부처 간 장벽, 정부와 R&D 관리기관들의 기획 전문성 부족, 기획자와 수행자 간 유착, 논문·특허 등 정량평가에 집중된 평가방식의 한계,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죽이는 과다한 서류작업, 논문과 특허를 위한 연구, 사업화 부진 등 고질병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교수나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기업의 연구원들이 선진국의 연구를 모방하거나 연구비를 쉽게 탈 수 있는 유행 분야에 몰리는 경향도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외견상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투자지표는 화려하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중이 2018년 정부와 민간을 합쳐 전년보다 0.26%포인트 증가한 4.81%로 2017년에 이어 이스라엘을 제치고 세계 1위를 고수했다. 정부와 민간의 R&D 총액은 전년보다 8.8% 늘어난 85조7,287억원(세계 5위)이었고 상근연구원(FTE)은 기업·대학·공공연구기관에서 전년보다 6.6% 증가한 40만8,370명(세계 6위)에 달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정부 R&D 예산은 오는 2023년까지 총 30조9,000억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연구자가 주제를 정하는 기초연구 예산도 2018년 1조4,200억원, 2019년 1조7,100억원, 2020년 2조300억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우일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명예교수(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차기 회장)은 “그동안 정부 R&D 과제 성공률은 98%라고 하면서 (응용·개발연구에서) 사업화 비율은 20% 정도밖에 안 됐다”며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R&D 사업화·창업화에 박차를 가하도록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어 “연구 단계에서 특허를 파악하는 지식재산권(IP) R&D에 신경 써야 한다”며 “과학기술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장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혁신전략연구소장은 “혁신성장을 위해 선도형 혹은 경로극복형 기술혁신이 필요하다”며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의 공진화가 심화되고 있으나 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조선 등에 특화된 구조에서 벗어나 바이오신약·AI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원천특허나 제품·기업·산업의 씨앗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KISTEP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논문 게재 수가 2018년 세계 12위이나 2014~2018년 피인용 횟수 세계 점유율은 2.15%에 불과하고 건수 중심의 부실특허도 지속되면서 사업화 비율이 낮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일본조차 외국 과학자가 많이 활동하는데 우리나라는 대학이나 출연연·기업에서 해외 전문가를 찾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바이오생명과학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출처=Shutterstock


R&D를 수행하는 출연연·대학·기업에 대한 쓴소리도 나온다.

25개 과학기술 출연연의 경우 혁신성장과 미세먼지 등 삶의 질 제고에 나서고 있으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로 인해 과제 따기 경쟁에 내몰리는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이 중 17곳은 올해 인력을 뽑을 때 성별·나이·학교 등을 가린 블라인드 방식의 공채를 실시하기로 했으나 박사급까지 그렇게 채용하는 것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익명을 원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의 한 이사는 “출연연이 많이 관료화돼 있고 연구가 중복되는 게 많아 조직 통폐합이 필요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고 산학연은 물론 출연연 간에도 유기적 결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R&D 분야에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밀어붙이고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는 것은 후유증을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 AI 기술로 창업한 윤병동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혁신성장을 외치지만 대학에도 창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수두룩하다”며 “R&D 과제선정이나 업적평가에서 교수의 연구실적 외에 창업을 통한 사회적 기여를 반영하는 게 필요하다. 한국연구재단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민형 선임연구위원은 “임팩트 있는 성과를 얻으려면 부처 간 장벽을 넘어 조정과 협력을 해야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다”며 “벤처 등 기업에 지원하는 R&D 예산도 규모만 늘려서는 안 되고, 혹시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효과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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