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기업 절반가량은 신규고용 규모를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일수록 올해 채용계획을 보수적으로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나랏돈을 풀어 일자리 늘리기에 ‘올인’하고 있지만 정작 일자리 창출의 핵심인 대기업들은 경기가 불투명한 가운데 채용을 확대하는 데 부정적이다. 올해도 양질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제신문이 5일 현대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한 ‘2020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에서 올해 신규고용 규모를 묻는 질문에 ‘지난해와 동일 수준’이라고 답한 기업이 49.0%로 가장 많았다. 올해 신규고용을 ‘지난해보다 늘리겠다’는 기업은 46%였고 ‘지난해보다 줄이겠다’는 기업은 5%다. 기업 규모별로 매출 10조원 이상 기업의 73.9%, 자본금 10조원 이상 기업의 71.4%가 올해 고용 규모를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매출 1조원 미만, 자본금 1조원 미만 기업 중 올해 고용 규모가 지난해와 같을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26.3%, 33.3%에 그쳤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고용 규모를 동결하겠다는 비율이 훨씬 높은 것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일수록 고용 확대에 소극적인 것은 올해 투자가 고용과 직결되는 설비투자보다는 고용 유발효과가 상대적으로 작은 연구개발(R&D) 및 인수합병(M&A)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면서 “기업 투자를 늘려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를 과감히 풀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경영목표와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매출·설비투자·R&D·영업이익 등의 부문에서 지난해보다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특히 전기·전자업종 기업들은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며 실적이 전년 대비 크게 쪼그라들었지만 올해는 반도체 가격 회복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돼 큰 폭의 실적 개선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전반적으로 올해 경영목표가 지난해 대비 소폭(1~5%) 늘어날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아 올해 경영환경에 대한 보수적인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매출목표는 조사 대상기업의 78.4%가 지난해보다 확대했다고 답했다. 전년도와 동일한 수준이라고 답한 기업은 13.7%였고 매출목표를 하향 조정한 기업은 7.8%를 기록했다. 매출목표를 늘려 잡은 기업 중 ‘1~5% 확대’가 33.3%로 가장 많았고 ‘6~10% 확대(32.4%)’ ‘11% 이상 확대(12.7%)’ 등의 순이었다. 업종별로는 정보통신과 전기·전자는 각각 90%, 81.8%가 매출 확대를 예상한 반면 자동차는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본 기업이 50%에 그쳤다.
전체 기업들 가운데 설비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견이 50.6%로 많았지만 기업 규모별로는 매출 1조원 미만 기업은 57.9%가 설비투자를 늘리겠다고 한 반면 매출 10조원 이상 기업 중 설비투자를 늘리겠다는 곳은 37.5%에 그쳐 대기업일수록 설비투자 확대에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업종별로도 전기·전자 업체는 36.4%, 자동차는 16.7%에 그쳐 주력업종들이 설비투자에 소극적이었다. R&D 투자는 55.5%가 ‘확대하겠다’고 답했고 ‘전년 수준’이라는 답변이 41.6%, ‘축소’는 3%였다. R&D 투자를 늘리겠다는 업체 비중은 제약·바이오(88.8%)와 정유·석유화학(75%)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올해 영업이익은 응답기업의 66%가 지난해 대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고 ‘전년도와 동일 수준’ ‘줄어들 것’이라는 기업은 각각 17%로 나타났다. 영업이익 증가폭은 ‘1~5%’가 32%로 가장 많았고 ‘6~10%(23%)’ ‘11% 이상(11%)’ 순이었다. 업종별로 정유·석유화학과 제약·바이오는 100%의 기업이 영업이익 증가를 전망했고 전기·전자도 영업이익이 늘 것이라는 비율이 80%에 달했다.
올해 기업활동의 우선순위를 묻는 질문에는 ‘수익성 향상’을 꼽은 비율이 53.3%로 가장 높았다. 이어 ‘해외시장 진출 확대(10.5%)’ ‘신사업 진출(9.5%)’ ‘비상경영체제 유지(8.6%)’ ‘매출 증대(7.6%)’ 등이 뒤를 따랐다. 업종별로는 조선 50%, 철강 33.3%, 전기·전자 25%의 기업이 비상경영체제 유지에 우선하겠다고 답해 주력업종일수록 구조조정 등 비상경영의 끈을 놓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자금 사정은 지난해와 비슷할 것이라는 기업이 60.6%로 가장 많았다. 자금 사정이 호전될 것으로 본 기업은 23.1%였고 나빠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16.4%를 기록했다.
지난해 경영 성과를 묻는 질문에는 ‘예상 수준’이라는 응답이 43%로 가장 높았고 ‘다소 못 미쳤다’가 31.8%, ‘다소 상회했다’가 13.1%를 기록했다. 지난해 경영 성과가 예상보다 부진했던 이유로는 ‘내수 부진(48.9%)’ ‘수출 부진(28.9%)’ ‘비용 증가(22.2%)’가 꼽혔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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