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이란산 비축유를 놓고 정부와 업계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중동 리스크로 유가가 출렁이면 비축유 사용이 불가피하지만 이란산을 사용했다가 자칫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13일 관계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이란산 비축유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전달했다. 현대오일뱅크 사업장이 위치한 서산 공장 인근에는 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서산 비축유 단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현대오일뱅크는 비상 시 서산 단지에 비축해둔 물량 등을 사용한다. 서산 단지에는 지난해 4월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 직전까지 수입해둔 이란산 원유가 저장돼 있는데 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오일뱅크가 애로를 호소한 것은 미국이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총사령관을 살해한 이후 미국과 이란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강력한 추가 경제제재를 통해 이란을 옥죄겠다고 어르고 있다.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업계는 이란산을 정제해 팔았다가 공연히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석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 비축유에서 이란산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진 않다”면서도 “만에 하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처럼 대형 악재가 터질 경우 하루분이 아쉬울 수 있으니 업계가 우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확인을 받았다는 정부의 설명에도 업계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산업부는 지난해 이란 제재 직후 이란산 비축유를 사용해도 되는지를 미국에 문의했고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국지적 무력충돌 가능성까지 제기될 정도로 양국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며 “미국이 이란을 향해 어느 정도 수위의 제재를 꺼내 들지 모르는 상황이라 이란산을 꺼내 쓰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유사 시 이란산 외 물량을 우선 사용하게끔 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공장에 인접한 비축 기지 물량을 우선 사용하도록 돼 있다”며 “서산 기지에 비축된 이란산 원유를 사용하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 타 비축 기지에 저장해둔 다른 국가 원유를 활용하게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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