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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별세]21세때 83엔 들고 日로… '껌 기적' 일구고 韓 재계5위 '우뚝'

전당포 주인 만나 日서 사업 첫발

1948년 '롯데' 간판 처음 내걸고

제과기업 넘어 日 10대 기업으로

한일수교 이후 고국으로 사업 확장

호텔·유통·건설·화학 전방위 진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사진제공=롯데




19일 별세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지난 1942년 수중에는 단돈 83엔(당시 면서기 두 달치 월급)뿐이었다. 우유와 신문 배달로 고학하고 껌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신 명예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일궈낸 ‘천생 기업인’이었다.

◇일본에서 이룩한 ‘껌 신화’=청년 신격호는 일본 전당포 주인이었던 60대의 ‘하나미쓰’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하나미쓰는 고학하며 어렵게 생활하는 신 명예회장의 성실함을 믿고 군수용 커팅오일 제조공장을 차릴 것을 제안했다. 소요 자금 5만엔은 하나미쓰가 전액 출자하겠다고 했다. 하나미쓰의 제의를 받아들인 신 명예회장은 일본 도쿄 오모리에 공장을 임차해 사업에 착수했으나 가동하기도 전에 미군의 포격을 받아 파괴되고 말았다. 새로 마련해 1년 동안 운영하던 공장도 또 한 번의 포격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신 명예회장은 이에 굴하지 않고 ‘히키리 특수연구소’라는 간판 아래 비누와 포마드 등 유지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일본 내 생필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1년이 되지 않아 적지 않은 돈이 들어왔다. 공장 운영 1년 반 만에 신 명예회장은 하나미쓰에게 빌린 차입금을 전부 상환하고 이자로 집 한 채를 선물하기도 했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롯데제과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신 명예회장의 사업가 기질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껌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미군 주둔 이후 일본에서 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신 명예회장은 1947년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를 설립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여주인공 ‘샤롯데’의 이름을 따왔다.

신 명예회장은 껌의 소비층이 어린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풍선껌을 장난감처럼 즐길 수 있도록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껌 포장에 당첨 시 1,000만엔을 주는 추첨권을 넣는 마케팅도 성공적이었다. 1961년에는 유럽 기술자들을 초빙해 일본 내에서도 제조가 힘들다고 평가받던 초콜릿 시장에 뛰어들어 일본 내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기업보국’=일본에서 상사·부동산·편의점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10대 기업 반열에 오른 신 명예회장은 고국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던 박정희 정권의 기조에 호응하는 한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따른 수익 창출을 기대하며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280360)를 설립했다. 당시 신 명예회장은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하겠지만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다”며 “소생의 기업 이념은 품질본위와 노사협조로 기업을 통해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롯데호텔 설립 추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롯데는 쥬시후레쉬·스피아민트·빠다쿠키 등 히트 상품을 앞세워 급성장했고 음료·빙과는 물론 호텔·쇼핑 등 유통과 관광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또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011170))과 평화건업사(현 롯데건설) 등을 인수해 국가 기간산업에도 진출했다. 현재 화학 부문은 롯데그룹의 캐시카우가 됐고 롯데건설이 건설한 ‘롯데타워’는 한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80년 한국후지필름, 1982년 롯데캐논·대홍기획 등을 설립하며 계속 사업 영역을 넓혔다. 고속 성장기를 맞은 1980년대 신 명예회장은 연이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롯데를 국내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신 명예회장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롯데호텔·롯데월드·롯데면세점 등 관광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공로로 1995년 관광 산업 분야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지난 1989년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현해탄 오가며 ‘셔틀경영’=신 명예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을 오가며 그룹의 현안을 챙긴 ‘셔틀경영’ ‘현해탄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홀수 달은 한국에, 짝수 달은 일본에 머물며 양국 사회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는 경영 방식이었다. 홀수 달에 신 명예회장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마련된 집무실 겸 숙소에서 지내며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지난 한 달 간의 경영 상황을 보고받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2013년 신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하기까지 이러한 ‘셔틀경영’은 30년 동안 이어졌다.

롯데그룹을 이어받은 신동빈 회장도 이러한 경영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신 회장은 2018년 출소한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 현지 임직원·주주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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