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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 120개국에 암호장비 팔고 기밀 빼내…한국도 고객"

■WP, CIA작전문건 입수 폭로

스위스 암호장비업체 비밀리 통해

수십년간 獨정보기관과 공조하며

적·동맹 구분없이 무차별 정보수집

"화웨이 비난하더니"…美 집중포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암호장비 회사를 몰래 소유한 채 반세기 동안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해외 국가기밀을 빼낸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유착관계에 있다며 맹비난한 미국이 오히려 해외 국가안보를 위협한 것으로 드러나며 미국 정부는 ‘내로남불’식 외교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암호장비 회사가 위치한 스위스는 이번 의혹에 대해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도 책임론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는 모습이다. 가뜩이나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화웨이의 스파이 행위 이슈가 도마에 오르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어 국제사회 외교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독일 방송사 ZDF와 함께 CIA 내부기관인 정보연구센터가 작성한 문건 등 자료를 입수해 CIA가 스위스 암호장비 회사인 ‘크립토AG’를 이용해 120개국의 기밀을 빼낸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에 암호장비를 제작·판매해온 스위스의 크립토는 CIA가 서독 정보기관인 BND와의 협조하에 소유해온 회사로 드러났다. CIA는 BND와 미리 암호장비 프로그램을 조작해 이 장비를 이용한 국가에서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내는 데 사용된 코드를 손쉽게 해독했다. 이 과정에서 입수한 정보는 미국과 독일뿐 아니라 ‘파이브아이스’라 불리는 영국과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동맹들에도 공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WP는 전했다.

지난 1970년부터 CIA는 미 국가안보국(NSA)과 함께 크립토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통제했다. 1978년 이들은 미리 조작해둔 프로그램을 통해 이집트와 이스라엘, 미국이 중동평화협정을 맺을 때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의 통신을 몰래 모니터링했다. 이듬해 이란에서 미국대사관 습격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NSA 국장은 크립토 장비를 통해 통신 내역을 확보,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이란 측의 반응을 수시로 보고했다.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나이트클럽 폭탄테러에 대응해 리비아 공습을 지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작전 덕분이었다고 WP는 보도했다. 이후 ‘루비콘’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작전에 대해 CIA는 보고서에서 “세기의 정보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보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이 적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기밀을 빼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과 독일은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으나 미국은 동맹이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장비를 사게 해야 하며 “첩보의 세계에 친구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WP는 전했다. 이에 따라 확인된 62개국에는 미국과 갈등관계에 있던 이란과 인도·파키스탄은 물론 미국의 오랜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들어 있었다. 1981년을 기준으로 봤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었으며 한국도 10위권에 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이 주된 타깃으로 삼았던 구소련과 중국은 정작 크립토 장비를 이용하지 않아 미국의 작전은 한계에 부딪혔다. 여기에 1992년 크립토 판매직원 한스 뷸러가 고객국가였던 이란에 구금되며 중대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인질로 잡힌 뷸러는 9개월간의 구금 끝에 100만달러를 내는 조건으로 풀렸는데 이 돈은 BND의 돈이었다. 뷸러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의구심을 표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은 발각 위험이 크다고 판단해 작전에서 빠졌지만 미국은 2018년까지 계속 이어갔다.

WP의 이날 보도는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화웨이가 중국 당국과 유착했다며 안보 우려를 강조해온 미국이 수십년간 무차별적으로 해외 기밀을 털어왔다는 점에서 논란은 확대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 화웨이를 안보를 위협하는 블랙리스트에 올려 자국 기업이 화웨이와 거래할 때 정부의 승인을 받게 하는가 하면 화웨이가 제작하는 5세대(5G) 장비를 거부하지 않는 동맹국에 제재를 가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스위스 당국은 크립토를 통해 CIA가 정보를 손쉽게 빼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캐롤리나 보렌 스위스 국방부 대변인은 1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크립토에 대한 사안을 지난해 11월5일 내각에 통보했으며 지난달 15일 해당 사안을 검토하기 위해 전직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고 오는 6월까지 보고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BBC는 “스위스 내부에서 중립국으로서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괴로움의 한숨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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