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다리 위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설치된 ‘SOS생명의전화’를 통한 상담 건수가 줄고 있는 와중에도 20~30대 청년층의 상담 비중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취업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청년세대의 발길을 다리 위로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 한국생명의전화에 따르면 최근 3년간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걸려오는 상담전화는 2017년 901건에서 지난해 633건으로 2년 새 3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려 극단적 선택까지 무릅쓰고 한강 다리 위를 찾은 이들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전체 상담전화 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20~30대 청년층의 상담비중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먼저 2017년 전체 상담자 중 28.3%를 차지하던 20대는 지난해 36.0%로 뛰어올랐다. 또 30대 역시 같은 기간 6.5%에서 8.2%로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걸려오는 상담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20~30대라는 뜻이다.
전체 상담 건수 가운데 119구조대가 실제로 출동한 비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17년 25.8%였던 119 출동 비중은 지난해 31.9%로 상승했다. SOS생명의전화를 통해 전화가 걸려오면 상담을 요청한 사람의 심리상태와 상담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을 추려내 119구조대가 현장에 출동한다.
이처럼 청년층의 상담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은 극심한 취업난 등으로 이들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20~30대의 가장 큰 고민유형으로는 ‘진로·학업’과 ‘경제적 문제’ ‘대인관계’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은 “취업난으로 생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데다 취업을 해도 부모 세대만큼의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어려운 환경에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는 것 같다”며 “여기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상황이 더 악화하면서 청년세대의 극단적 선택이 늘어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마음먹고 한강 다리 위를 찾았다가도 상담을 통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지난달 9일 새벽 20대 초반의 한 남성은 잠실철교와 올림픽대교를 오가며 SOS생명의전화에 두 차례나 전화를 걸며 자살 소동을 벌였다. 현장에는 즉시 경찰과 119구조대가 출동했고, 상담과 설득을 통해 20대 남성은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박수안 한국생명의전화 팀장은 “한강 다리 위에서 상담전화를 거는 건 죽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는 증거”라며 “누군가 나의 아픔을 알아줬으면 하는 감정 때문에 전화를 걸어오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답답함이나 우울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자살사고를 막기 위해 2011년 7월 한강 주요 다리 위에 처음 도입된 SOS생명전화는 올 3월 기준 전국 20개 교량에 총 75대가 설치돼있다. 생명보험사회공단재단의 예산지원 등으로 운영되는 SOS생명의전화는 약 50명의 상담사들이 24시간 쉴 틈 없이 한강 다리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다. /허진·이승배기자 hjin@sedaily.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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