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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삶이고 세상이다…不刻의 조각가 김종영 인체조각展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전관 6월7일까지

현존 最古 근대석고상 1936년 조모상

탁월한 묘사력이 손대지 않은 자연미로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

몸의 의미·가족 가치 뒤돌아볼 기회로

김종영의 ‘자각상B 작품71-5’




나무 옹이 두 개가 그대로 눈망울이 됐다. 생생한 나무 결은 시간이 쌓인 주름살로 자리 잡았다. 웃을 때 잡히는 눈가 주름은 정겹고, 한줄기 눈물 같은 흔적은 애잔하나 서럽지 않다. 툭툭 아무렇게나 쳐 낸 듯한 자리가 얼굴이 됐으니 자연과 사람의 혼연일치다. 인위적 가공을 배제한 자연스러운 미학을 추구한 불각(不刻)의 조각가 우성 김종영(1915~1982)의 1971년작 ‘자각상B 작품 71-5’이다.

9년 뒤의 ‘작품 80-5’는 그의 또 다른 자각상이라 불린다. 마치 선승(禪僧)의 그림처럼 하나의 획으로 그린 1974년작 먹그림 ‘자화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처럼 길쭉하게 그린 얼굴에 일획의 코, 점으로 찍은 눈과 입이 단순하지만, 과묵하고 곧은 작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어려서부터 서예를 연마한 작가가 기교를 쏙 뺀 어린아이의 붓질 같은 대교약졸(大巧若拙·높은 기교는 서투른 것처럼 보인다)의 경지에 올랐다. 이 그림과 함께 ‘작품 80-5’를 보면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얼굴에 코 하나 붙인 모습이 닮은 꼴이다. 코와 나무결은 수직인데 얼굴이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 비대칭의 극적인 미감을 풍긴다. 두상을 깎은 것인지 헌 한옥에서 발견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손 댄 흔적이 적은 작품이 사색하는 인간의 근본을 보여줘 절정에 오른 ‘불각의 미’로 꼽힌다.

김종영의 ‘작품80-5’와 1974년에 먹으로 그린 ‘자화상’이 나란히 전시중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기획전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의 인체조각’을 열고 있다. 그간 작가의 추상 조각이 부각된 까닭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인체 조각을 소개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추상조각으로 발전했는지 들여다 봤다. 명상적인 전시이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몸의 의미와 가족의 가치를 되돌아 볼 기회다.

기획 의도대로 전시를 보려면 입구 앞 오른쪽의 본관2전시실에서 시작하자. 도쿄미술학교로 유학 간 김종영이 1학년이던 1936년 여름 방학 때 제작한 ‘조모상’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근대 조각이자 유일한 1930년대 석고상이다. 한국 최초의 조각가 김복진을 비롯해 근대 조각가의 초기작은 거의 전하지 않고 1940년대 작품만 몇 점 남은 상황에서 이 작품은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할머니의 자상한 품성이 얼굴에서 느껴질 정도로 김종영의 묘사력은 탁월했다. 작가가 특정인을 모델로 삼은 조각은 할머니·어머니·부인과 본인 뿐이었으며 가족 외에는 서울대 음대 입구의 현제명 흉상과 소녀상이 유일하다. 대리석을 깎은 부인상과 치옥석을 다듬은 어머니상 사이에 놓인 1964년작 ‘자각상A’는 덜 다듬어 울룩불룩한 칼질이 세파의 흔적처럼 선명하다. 매사 진지한 눈매와 말을 아끼려 꾹 다문 입이 작가의 평소 성정을 드러낸다.

김종영의 1950년대 ‘부인상’(왼쪽부터), 1964년작 ‘자각상’, 1974년작 ‘어머니상’


김종영의 여인입상 변천사를 보여주는 ‘작품53-1’(왼쪽사진)과 ‘작품74-1’.


가족 등을 그린 드로잉은 작가의 인체에 대한 연구 과정이다. 머리에 손을 대고 서 있는 여성을 조각한 1953년작 ‘작품53-1’과 김종영의 마지막 여인입상인 1974년작 ‘작풉74-1’이 나란히 놓여 20여 년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신관에서는 김종영만의 비대칭과 불각의 미가 펼쳐진다. 동시에 1950년대에 작성된 ‘추상예술(Abstract Art)’과 ‘수상(隨想)’이라는 작가의 예술노트가 처음 공개됐다. 추상조각의 거장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를 “추상 작가로서 투철한 지성이 부족한 것이 유감”이라 분석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김종영의 추상화한 인체는 세상으로 확장된다. 유기체 같은 곡선미는 풍만한 여체를 그리는가 하면, 부둥켜 안고 의지하는 ‘가족’이 되기도 한다. 1965년작 ‘가족A 작품65-7A’의 원작인 대리석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며, 전시에는 청동작품이 나왔다. 1970년대에는 사각형이 겹치고 덧붙은 듯한 기하학적 형태로 변화하는데 이것이 꼭 사람 얼굴처럼 보인다. 작가가 자신이 살던 성북동 삼선교 주변을 그린 ‘산동네 풍경’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직선들이 마을을 이뤘다. 추상의 형태가 사람이요, 집이자, 세상의 형상이 됐다.

김종영 ‘가족A 작품65-7A’


각진 기하학적 형상이 두상을 연상시키는 김종영의 1970년대 조각과 1976년작 ‘산동네 풍경’(오른쪽부터)과 ‘드로잉’


김종영의 ‘작품80-3’(왼쪽)과 드로잉.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 조각의 모티브는 인체에서 출발해 식물,산과 같은 자연으로 확대됐는데 이는 선비의 자연관과 학문하는 태도와 직결돼 있다”면서 “20세기 한국미술의 과제이자 해법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보편성에 기반한 특수성을 찾아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6월7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김종영의 ‘인체조각’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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