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취임 1년9개월 만에 시장직에서 자진사퇴한 가운데 오 시장 측과 피해 여성 공무원 A씨가 4·15총선 뒤에 사퇴하겠다고 합의한 데 따른 논란이 일고 있다. 성추행은 이번 달 초 이뤄졌다.
이날 열린 오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은 A씨의 성추행 사실 폭로 예고에 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추행 직후 A씨는 자신의 피해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4월 말 이전에 사퇴할 것과 사퇴 이유에 강제추행 사실을 명확히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오 시장 측은 A씨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사퇴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또 법무법인의 공증도 받았다. 사퇴서의 법적 효력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다 보면 중간에 합의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한다”며 “확실히 하기 위해서 공증을 받는 게 좋아 이번 건도 공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공증에는 총선 이후에 사퇴한다는 내용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이번 달 말까지 사퇴한다는 날짜는 적시돼 있다”고 말했다.
사퇴시기가 4·15총선 이후가 된 것은 조율하는 과정에서 부산시의 이 같은 제안을 A씨가 동의하면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도 “성추행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부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의도적으로 사퇴 시점을 조율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A씨 이날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하다”며 “저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A씨가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 따르면 A씨는 이달 초 업무시간에 처음으로 오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에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오 시장은 A씨와의 면담 과정에서 특정 신체 부위를 만졌고 이에 격분한 A씨는 변호사와 함께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찾아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미투(MeToo)’ 사건에 연루돼 광역단체장이 사퇴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오 시장은 이날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며 “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행동이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안다”며 “이런 잘못을 안고 위대한 부산시민이 맡겨주신 시장직을 더 수행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사죄하고 참회하면서 평생 과오를 짊어지고 살겠다”고 울먹이며 4분 남짓한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와 관련된 질문도 받지 않았다.
오 시장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 관련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 등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오 시장이 한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오 시장 측은 이들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강 변호사 등 3명을 대상으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8년 11월에는 시청 근로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자신의 양옆에 여성 근로자들을 앉게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찰은 오 시장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이날 부산경찰청은 여성청소년수사계가 오 시장이 사퇴하며 밝힌 성추행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오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성추행 내용 외에 구체적인 범행 시점과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의 사임 통지서는 이날 부산시의회에 제출됐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사임통지서는 접수된 날로부터 바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변성완 행정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으로 시정을 이끈다. 오 시장의 정무 라인도 일괄 사퇴한다. 오 시장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는 내년 4월 첫 번째 수요일인 7일께 치러질 예정이다.
오 시장의 사퇴로 1호 공약인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 추진 작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동남권 관문공항 사업은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등이 10여년에 걸쳐 유치경쟁을 벌이다 2016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오 시장이 김해 신공항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재점화했다. 현재는 부울경 시도지사의 요구에 따라 국무총리실에서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인데 오 시장이 물러나면서 앞으로의 추진동력에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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