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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위용 드러낸 3,000톤급 '검은 고래'…해양강국의 꿈 건조 '구슬땀'

■대우조선해양 거제 특수선 건조 현장 가보니

해군력 책임질 잠수·수상함 건조

특수선본부에만 2,000명 근무

"1㎜의 오차도 허용할 수 없다"

갑판서 '장보고-Ⅲ' 작업 한창

전투함 '경남함' 12월 시운전 앞둬

우리나라 최초로 건조된 3,000톤급 차기 잠수함 ‘도산안창호함(KSS-Ⅲ)’./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지난 13일 오후 경남 거제의 대우조선해양(042660) 조선소의 특수선 함정건조 작업장. ‘지잉 캉캉’ 철판을 두드리고 연마하는 소음과 크레인이 움직일 때 나는 경보음이 귀를 울렸다. 지지대 위 근로자들은 ‘윙윙’ 쇠를 갈아냈다. 입안에 쇠를 머금은 듯한 맛이 났다.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 발발 이후 첫 승리를 거둔 이곳에서 한국 해군력의 정수인 잠수함과 수상함이 건조된다. 이순신 장군이 승전보를 울린 옥포 앞바다에서 한국 해군의 비전인 ‘해양강국, 대양해군’의 꿈이 세워지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안이 생명인 특수선 건조장은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날 대우조선해양은 사전 허가를 받지 않으면 직원들조차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특수선 건조장의 빗장을 이례적으로 서울경제에 열었다.

특수선 함정건조 작업장은 한국 해군의 현재와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함정 건조장에 들어서자 8년 임무를 마치고 설계수명이 다한 부품 등을 교체하는 ‘창 정비’를 위해 돌아온 장보고급(1,200톤) 잠수함 ‘박위함’이 시야를 압도했다. 선체에 새롭게 칠한 검은색 특수 페인트와 수많은 임무를 거치며 빛이 바랜 기존 페인트의 명암 대비가 뚜렷했다. 박위함은 2000년 ‘환태평양합동군사훈련(RIMPAC·림팩)’에서 적 함정 11척을 격침하고 훈련 종료 때까지 단 한 차례의 공격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생존한 기록을 세운 날카로운 ‘창’이자 ‘방패’였다.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30여년 전 독일 엔지니어들을 어르고 달래며 기술을 배우고 밤낮없이 만들어낸 땀의 결실이었다.

맞은편에는 박위함을 압도하는 크기의 ‘검은색 고래’가 잠자고 있었다. 이 선박은 장보고-III급(3,000톤) 배치-1의 2번함. 전략적 의미가 큰 신형 함정이어서 ‘21세기 거북선’으로도 불린다. 1㎜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차세대 잠수함 건조를 위해 근로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업 중이었다. 사다리를 올라 내려다본 갑판에는 미사일을 수직으로 신속하게 발사할 수 있는 수직발사관(VLS)이 보였다. 이 수직발사관을 통해 아무도 감지하지 못하는 깊은 바다에서 최대 사거리 1,500㎞의 미사일을 쏴 적의 전략목표물을 맞힐 수 있다. 장보고-III는 디젤전지 추진 재래식 잠수함이 매일 배터리 충전을 위해 물 위로 떠올라야 하는 것과 달리 ‘AIP’라고 불리는 공기불요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바닷속에서 3주 이상 계속 작전을 할 수 있다.

함정 건조장 밖 바다가 보이는 안벽에는 해군의 최신예 호위함인 ‘경남함’이 올해 12월 인도 전 시운전 평가를 위해 정박해 있었다. 길이가 122m에 달하는 큰 배이지만 날카로운 선수(船首) 덕분에 날렵해 보였다. 경남함은 대공·대지·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갖춘 전투함이다. 수중 방사소음 감소를 위해 가스터빈과 디젤발전기로 구성된 디젤전기 추진전동기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추진체계가 탑재된 것이 특징이다.

해군 최신예 호위함 ‘경남함’과 같은 급인 대구함의 항해 모습./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대구함 함포.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은 1981년 방산업체 지정과 함께 약 40년간 국내 해양 안보 전력을 공급해왔다. 전체 직원 2만8,000명 가운데 약 2,000명이 특수선본부에 근무하고 있고 국내 최대 함정설계기술인력(500여명), 최대 건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선사업은 수주가뭄에 시달릴 때 ‘단비’ 역할을 해왔다. 2013년 이후 5년 만에 방산 부문 수주액 10억달러를 돌파했으며 지난해는 1차 사업에 이어 인도네시아 해군으로부터 1,400톤급 잠수함 3척을 약 1조1,600억원에 추가 수주했다. 오성근 특수선사업담당 수상함PM부장은 “특수선은 정부와의 계약이라는 특성상 상선보다 수익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선가가 비싸고 건조기간도 길다”며 “경남함 한 척이 3,500억원인데 2만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비용은 2,000억원대인점을 고려하면 선가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견고했던 특수선 사업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파도를 피하지 못했다. 해외에서 들여와야 할 장비의 수입 길이 막혔고 이를 시운전할 서비스 엔지니어들의 입국이 제한된 탓이다. 생산 공법을 바꿔가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인도가 지연되면 하루당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지체보상금을 내야 할 위기다.



수출길도 좁아졌다. 유수준 특수선사업본부장(전무)은 “주요 수출국에 호위함 수출을 위한 제안서를 내고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중단됐다”며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태국 등의 수출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예정됐던 수출 물량이 지연되면서 대우조선해양은 우리 해군이 발주할 차세대 첨단 수상함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해군은 주변국 해군력 증강에 대비하기 위해 경항공모함·차기구축함(KDDX)·통합화력함·호위함 등을 발주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이에 대비해 함정용 전기추진체계를 선제 개발했고 가상현실(VR), 자동화체계 등 스마트함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유수준 대우조선해양 특수선사업본부장. /사진제공=대우조선해양


정부는 경쟁입찰로 사업을 발주했지만 의도치 않게 대우조선해양에 잠수함을, 현대중공업(009540)에 수상함을 전문생산하는 구조로 발주를 내면서 양사 모두 기술인력 유지에 애를 먹고 있다. 유 전무는 “잠수함과 대형전투함 연구개발(R&D)과 건조에는 대략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일감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인력의 도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했다. 현재와 같이 한쪽에 치우친 사업구도가 이어진다면 대우조선해양은 수상함에서, 현대중공업은 잠수함에서 기술 기반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유 전무는 “서방의 전유물인 잠수함과 대형전투함의 국내 독자 개발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기술경쟁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건강한 경쟁구도를 유지하고 지속적이고 선도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스마트해군, 대양해군 건설에 기여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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