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오는 23일(현지시간) 출간 예정인 자신의 회고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청했다고 밝혀 미 정가에 파문이 일고 있다. 탄핵 사태를 불러왔던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수사 압력 사건에 이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국익에 연계한 사례가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백악관은 회고록 출판을 막기 위한 긴급명령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파급력이 커 가뜩이나 지지율 악화로 부담이 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볼턴 전 보좌관의 책 ‘그것이 일어난 방:백악관 회고록’ 주요 내용을 발췌해 게재한 내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시 주석에게 대선용 농산물 구입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콩과 밀 수입 확대가 선거 결과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시 주석에게 자신이 (대선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간청했다”고 폭로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시 주석이 농산물을 우선순위에 둔 협상 재개에 동의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웠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가운데 재선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인권 문제도 협상을 위한 부속품으로 봤다. 볼턴 전 보좌관에 따르면 중국 톈안먼 시위 30주년을 맞은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은 15년 전 일이다. 누가 그것을 신경 쓰나. 나는 거래를 하려고 할 뿐”이라고 했다. 또 시 주석에게 중국 내 위구르족 수용시설을 계속 지으라 하고 지난해 홍콩 시위에 대해서는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북미 관계에서는 복심으로 알려진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조차 트럼프 대통령을 깎아내렸다. 볼턴 전 보좌관은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도중 자신에게 그(트럼프 대통령)는 거짓말쟁이라는 쪽지를 건넸다”며 “회담 한 달 뒤에는 북미 외교의 성공 확률이 제로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등 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사건에 집착해 탄핵을 그르쳤다는 비판도 했다. 그는 “2018년에는 시 주석과의 관계 때문에 ZTE에 대한 상무부의 제재를 되돌려놓았다”며 “민주당이 이런 일들을 두루 살펴봤다면 탄핵 결과는 아마 달랐을 것이다. 과실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번 폭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따른 시위로 입지가 좁아진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11월 치러질 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미 경제방송 CNBC가 이날 내놓은 애리조나와 플로리다 등 6개 경합주의 여론조사를 보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48%의 지지율로 45%인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단계 미중 무역합의는 어떻게든 이행되겠지만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에 따른 미국의 대중제재는 다소 제한적인 수준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지도부가 무역합의 이행의 마지노선을 홍콩 보안법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들의 북핵 문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도발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다만 볼턴 전 보좌관의 정책 방향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NYT는 “볼턴은 복잡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로 북한과 이란에 군사행동을 선호해왔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논란과 관련해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는 상원 인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상원 인준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를 줬다”면서 “가망이 없는 사람(washed-up guy)’이었다”고 비난했다. 이어 “나보다 러시아나 중국에 대해 강경했던 사람은 없으며 내 근처에 온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뉴욕=김영필특파원 노희영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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