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러화 가치가 급락한다는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 외에도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요. 월가 역시 달러 약세에 베팅하고 있습니다. 달러화, 이제 손 떼야 할까요?
달러가치 하락 피할 수 없어...5~10년 간 약세장 올 수도 |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의 주장은 더 구체적입니다. 앞서 그는 “미국 달러화가 과도하게 특권을 누리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며 달러화 가치가 3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로치 교수는 미국 경제의 낮은 저축률과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이 같은 흐름을 만들어 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의 5월 연방재정적자는 4,240억달러(약 508조2,9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가 넘습니다. 이번 회계연도의 재정적자만 3조7,000억달러로 예상됩니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추가 재정지원책도 준비 중이죠.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QE)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커지는 재정적자는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로치 교수에 따르면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0년 70%대에서 최근 6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달러 붕괴는 1~2년 뒤, 아니면 이보다 더 뒤에 벌어질 수 있으며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그의 전망입니다.
월스트리트도 당분간 강세를 보였던 달러의 힘이 빠지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수치로 나타나는데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3월20일 102.82였던 달러인덱스는 19일 현재 97.66입니다. 지난 10일에는 95.96까지 빠졌습니다. 달러인덱스는 유로와 엔, 파운드 등 6개 통화를 기준으로 미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것인데요. 달러인덱스가 상승하면 달러 가치가 오른다는 뜻입니다.
이는 경제활동 재개로 각국의 경기회복 가능성이 높아졌고 프랑스와 독일의 코로나19 회복기금 제안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JP모건은 “경제봉쇄가 완화되면서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달러 매도의 핵심 동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골드만삭스와 씨티 같은 곳들도 달러화 약세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데요. 특히 씨티는 달러화가 아주 오랫동안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캘빈 체 씨티그룹 전략가는 “만약 글로벌 경제가 정말 바닥을 친 뒤 회복하고 있고 미국의 금리가 제로이며 잠재성장률이 신흥국보다 낮다면 우리는 달러가 5~10년간 지속되는 약세장이 진입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달러화에 투자하지 마라는 뜻이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달러화를 두고 “월가의 전략가들은 달러 가치가 극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美만 돈푸는 것 아냐...유로화, 수십년 간 기축통화 못 됐다 |
1차 부양책으로 117조엔을 쏟아부은 일본 정부도 100조엔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검토 중이고 유럽연합(EU)은 7,500억유로의 경기회복기금 조성에 합의한 바 있습니다. 환율이라는 것이 상대적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재정적자 폭이 늘어나고 돈을 풀고 있으니 미국만 보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미국이 수조달러를 찍어내고 있어도 바로 달러화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논리의 근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달러 붕괴에 대한 얘기가 나온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달러화는 기축통화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들어 달러인덱스가 70대선까지 추락했지만 이후 다시 올랐습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때도 너도나도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렸죠.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연 0.6%대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대안이 없다는 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유로화와 엔화도 수십년 간 달러화를 대체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데이비드 루빈스타인 칼라일그룹 공동창업자 겸 회장은 “유로화가 기축통화가 못 된 것은 의아하다”면서도 “지난 수십년 간 유로화나 위안화, 엔화도 사실상 기축통화가 되지 못했다. (이들은) 가까운 장래에도 기축통화가 못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큰 틀에서 보면 달러의 힘이 조금씩 빠지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1967년부터의 달러인덱스 추이를 보면 큰 진폭에도 전체적으로 우하향 추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도 최악은 지난 만큼 향후 경기회복 속도를 봐야지만 3월 수준의 달러화 강세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로치 교수 말처럼 35%가량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려면 달러인덱스 기준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경기침체가 다시 찾아와야 할 겁니다. 최근 미국 경기가 바닥을 찍고 회복을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더블딥(이중침체), 그것도 거대한 침체가 찾아와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2011년 이후처럼 다시 달러화 가치가 오를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하면 통화자산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겠지요.
하나 더, 지금으로서는 중장기적으로라도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나마 유로화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켄그린 UC버클리 교수는 “나는 유로화에 걸겠다”며 “위안화의 경우 사람들이 중국 정부를 완전히 믿지 못한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물론 미국도 과거 닉슨 정부 때 금태환 중지를 했죠. 최근 들어 미국 정부의 정책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특히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강행해 일국양제 약속을 무너뜨리는 중국 정부를 보면 더 그렇습니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의 대중국 제재와는 별도로 이제 코로나19 사태와 홍콩 보안법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 지도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보고있습니다. 미국의 본격적인 대중국 견제도 시작됐지요.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가 빠른 속도로 자리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중국 정부의 디지털 통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중국 정부가 백도어를 심어 놓을 수 있고 돈 사용처를 추적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부분입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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