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거래에 대한 제재 수위를 급격히 높여나가고 있다. 올 초 플랫폼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데 이어 이제는 플랫폼 시장만을 규율하는 별도의 법률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기존 법률로는 신산업인 플랫폼 업계의 공정성과 건전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지만 과도한 규제가 나올 경우 플랫폼 시장의 성장세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가 별도의 법을 제정하기로 한 것은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는 거래가 기존의 전통적 거래와는 성격이 판이한 측면이 있어서다. 전통적 거래는 소비자와 판매자를 축으로 이뤄지지만 플랫폼을 통한 거래에는 이 둘을 중개하는 배달의민족·쿠팡 등의 플랫폼 사업자가 새롭게 등장한다. 전통적 거래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 기존 법률로는 플랫폼 사업자를 특정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공정위의 관점이다.
이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바로잡기도 쉽지 않다. 예컨대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을 방지하는 지침을 신설한다 해도 모법(母法)에서 사업자의 존재를 규정하지 못하니 지침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존에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법 집행을 하다 보면 잘못된 계약서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계약서 작성을 통해 초기에 거래질서를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별도 법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데는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세와 맞물려 영세한 입점업체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지난 2018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40% 가까이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 수수료·광고비 부담 전가 등을 경험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의 플랫폼 의존도는 더 커질 수 있다고 공정위는 내다봤다.
다만 업계에서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가 혁신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설익은 규제가 차별화된 플랫폼 모델을 고민하는 혁신적 기업인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갑자기 기존 입장을 바꿔 법 제정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정위는 올 초만 하더라도 새로운 법률을 만들기보다는 현행법의 틀 안에서 ‘심사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플랫폼 거래를 규율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플랫폼 시장 내 불공정 거래에 대한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지도 않았는데 섣불리 규제를 들이밀면 자칫 산업 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플랫폼 산업이 신성장 분야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며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얘기를 듣고 혁신 유인이 훼손되지 않도록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전자상거래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해 플랫폼 사업자의 법적 책임도 확대할 방침이다. 소비자 손해에 대해 플랫폼이 입점업체와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는 식이다. 올해 12월에는 거대 플랫폼이 소규모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는 인수합병(M&A)에 나설 경우 기업결합 신고를 하도록 공정거래법도 개정한다. M&A 대상 기업의 자산 총액이나 매출액 기준으로만 신고 의무를 부여했는데 기존 플랫폼 기업들은 규모가 작아 신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공정위는 일정 금액 이상 거래가 이뤄질 경우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대상으로 한 별도 심사지침도 마련한다. SSG닷컴·쿠팡·마켓컬리 등 대규모유통업법을 적용받는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대형 온라인 쇼핑몰이 납품업체에 비용 전가 등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존 대규모유통업법은 오프라인 거래를 상정하고 만든 법이라 온라인 쇼핑몰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고,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법 위반 행위가 많이 나타나고 있어 별도 지침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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