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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경제] “WTO에 진 빚, 사무총장 돼 갚겠다”는 유명희... 이유는?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거가 지난 16일(현지시간) 8명의 후보자 정견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164개 회원국의 표심을 얻으려는 선거 운동이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입니다. 대한민국 후보로 나선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당일 정견 발표를 마쳤습니다. 유 본부장은 “근본적인 위기에 봉착한 WTO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 국가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진 빚을 사무총장에 선출돼 갚겠다”는 점을 역설했다고 합니다. WTO가 위기에 빠진 점은 알겠는데, 무슨 빚을 졌다는 의미일까요?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WTO 본부에서 사무총장 후보자 정견 발표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무역 혜택, 모든 나라가 누려야”

정견 발표일, 8인의 후보 가운데 5번째로 나선 유 본부장은 통상 공무원으로서 WTO와 맺은 개인적인 인연을 소개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유 본부장은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통상 관련 업무를 시작했던 1995년에 WTO가 출범했고, 첫 출장도 (WT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행이었다”며 “전쟁의 폐허 속 가난한 나라에서 일어나, 세계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일생 동안 지켜봐 왔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발전 경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체제 덕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국가로서 대한민국과 개인으로서 저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WTO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며 “모든 회원국들은 각자의 발전 수준과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누렸던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각자 잘 생산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교역하는 ‘비교우위’ 이론을 토대로 발전한 국가와 그 국가에서 일한 공무원으로서 WTO의 위기 극복에 일조하겠다는 것입니다.

유 본부장은 “그동안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무역 관련 긴장 고조에 따라 어려워지는 상황을 목도 해왔다”며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초래된 세계적 위기는, 재화와 용역의 원활한 흐름을 보장해야 한다는 WTO의 목표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WTO를 재건하기 위해 유 본부장은 ‘적실성 있고 (relevant), 회복력이 있으며 (resilient), 대응력을 갖추는 (responsive)’ 3R의 비전이 필요하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25년 간 국제 통상 분야에서 일해온 경력을 타 후보와의 차별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전경. /연합뉴스




정부는 ‘승산 있다’는데... 과연?

정부는 유 본부장의 선출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입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WTO가 위기에 처했다는 바로 이 점입니다.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고, 이제는 분쟁해결 기능까지 잃어버린 WTO는 사실상 침몰하고 난파선과 같다”며 “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추고, 현직 고위관료로서 힘 있는 리더가 ‘선장’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5년 통상 공무원 경력으로, 한국의 통상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유 본부장은 그래서 적임자라는 설명입니다.

그럼 다른 후보들은 어떨까요? 이번 선거에는 한국을 비롯해 영국과 나이지리아, 이집트, 케냐, 멕시코, 몰도바, 사우디아라비아가 총 8개 국가가 후보를 냈습니다. WTO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졌다는 점을 모르는 후보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8명 모두 ‘WTO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정견 발표를 통해 피력했다고 합니다.

여성 후보 3파전으로 압축되고 있다는 설도 들립니다. 유 본부장과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전 세계은행 전무, 케냐의 아미나 C.모하메드 전 WTO 각료회의 의장이 그들입니다. 모두 쟁쟁한 후보라고 하는군요. 모하메드 전 의장은 유 본부장과 달리 WTO 고위직 경력을 갖고 있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일본의 ‘비토’가 방해가 되지 않을지 우려도 나옵니다. 수출규제를 둘러싸고 WTO 분쟁을 벌이고 있으니, 유 본부장의 선출을 막기 위해 회원국을 포섭하려 하리라는 예상입니다. 실제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성(장관)은 지난 7일 “일본도 선출 프로세스에 제대로 관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방해(?)가 실제로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통상당국은 ‘그래 봐야 큰 의미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역대 WTO 사무총장 선거가 후보를 헐뜯는 비방전으로 흐른 적이 없고, 국가 간 컨센서스가 형성되면 반대하던 국가도 ‘다수’로 돌아서기 마련”이라는 분위기도 전했습니다.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만장일치로 뽑는 구조에서 일본이 작정하고 끝까지 반대만 한다면?

이제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2달 동안 진행됩니다. 오는 9월7일부터 차기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회원국 간 협의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빚을 갚겠다’는 유 본부장의 슬로건은 과연 표심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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