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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기획·연재
'20조 프로젝트' 시동 거는 삼성동, 수십년 '강남 불패' 아성 지켜낼까?[영상]

역사와 부동산의 만남 '역지사지' EP.4

GBC,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등 호재 쏟아지는 삼성동

상업지구와 주택지구 혼재해 강남서도 독특한 동네









“단군이래 최대 사업 ‘현대차 신사옥 GBC’ 대박 기회 잡아라”

“개발호재 팡팡 터지네!” 삼성동 투자가치 집중 분석

“대형 호재 품은 ‘강남구 삼성동’ 이목 집중”




‘강남 불패 신화’의 한 축이자 강남 업무 지구의 중심인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미래를 다룬 언론 기사의 헤드라인입니다. 기사들 때문인지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는 사람마저 삼성동의 유망함은 익히 알고 있죠.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침부터 나와서 지금까지 그냥 앉아 있는 거예요. 그냥 집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

“정부가 삼성동, 청담동, 잠실 집 사라고 찍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2020년 7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 삼성동에 ‘단군 이래’란 수식어가 붙게 된 사연

최근 삼성역 일대에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만한 대형 개발 호재가 발표돼 삼성동이 서울시 내 어떤 지역보다 ‘핫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지난 5월 6일 서울시가 현대자동차그룹이 강남구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짓는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이하 GBC)’ 착공을 승인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요. 현대차그룹이 해당 부지를 10조5,500억원(평당 4억4,000만원)에 매입한지 약 6년 만입니다.



GBC는 지하 7층~지상 105층, 연면적 91만3,955㎡에 업무시설과 관광숙박시설·공연장·전시장 등을 포함하는 대규모 복합시설인데요. 완공은 2026년 하반기로 예정돼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이 지역에 이토록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입을 통해 표면적인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정 부회장은 서울 삼성동 부지 투자 이유에 대해 "미래 가치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요. 하지만 기업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궁극적인 이유를 정몽구 회장이 갖고 있는 4대 숙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정 회장의 4대 숙원은 ‘자동자 업계 글로벌 5위 진입’, ‘현대가의 적통 계승’, ‘고로 제철소 준공’, ‘통합사옥 건립’입니다. 이미 지난 2010년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순위 5위를 달성했고, 현대그룹의 모체인 현대건설을 인수해 현대가(家) 적통 계승도 달성했습니다. 또한 현대제철 등 수직계열화도 달성해 남은 숙원은 통합사옥 건립만 남았습니다. 애초에 현대차그룹은 뚝섬 부근에 통합사옥을 건설하려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 이상의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규제안을 발표해 제동을 걸어 뚝섬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큰 실망을 한 정 회장은 서울에서 통합사옥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부지인 한전 부지에 주목했고 큰 베팅을 하게 된 것이죠.

GBC가 문을 열면 대규모 일자리 창출 효과를 비롯해 생산 활동에 따른 소비증가 효과가 대단할 전망인데요. 한국도시행정학회는 타당성 조사를 통해 GBC가 들어서면 20년 동안 113만7,000명의 고용효과와 253조1,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도 7만9,000명의 고용효과와 12조5,000억원의 경제효과가 예상되죠.



GBC는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사업, 탄천 너머 종합운동장 일대의 국제교류복합지구 계획과 맞물려 있습니다. 복합환승센터 사업은 영동대로 지하에 지하 6층, 잠실야구장의 30배(연면적 16만㎡) 규모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기존 코엑스와 연결하는 상업시설을 비롯해 도심공항터미널·버스 환승센터·주차장·광역철도 통합역사 등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이 같은 호재는 실제 매각 사례에서도 확인됩니다. GBC부지 바로 맞은편 빌딩 거래 사례가 바로 그것이죠.



서울 강남구 삼성동 160-23 지하 1층~지상 5층, 대지면적 123평, 연면적 362평 빌딩입니다. 2015년 1월 118억9,000만원으로 평당 9,610만원에 매매했는데 2018년 7월에는 159억원으로 평당 1억2,845만원에 팔렸습니다. 건물주가 3년 동안 보유하면서 거둔 시세차익만 약 40억원에 달합니다. 이렇듯 ‘어마무시’한 포스를 보여주고 있는 2020년의 삼성동,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삼성동은 어쩌다 삼성동이 됐을까?

삼성동은 봉은사(奉恩寺)·무동도(舞童島)·닥점(저자도리:楮子島里)의 세 마을을 합쳐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삼은 데서 유래됐습니다. 세 마을을 합쳤다는 의미의 ‘삼성’이 지역 이름으로 거듭난 것이죠. 무동도는 마을 동쪽 한강 가운데 있던 섬으로 이 섬 남쪽에 어린 아이처럼 생긴 바위가 마치 춤추는 모습 같아 붙여진 이름이죠. 무동도는 부리도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은 서울 시민들의 낚시터로 이용되던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잠실처럼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많이 심어 ‘동잠실’로 불리고 했습니다. 닥점은 무동도 쪽에 있던 마을로 닥나무를 파는 상점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집니다. 삼성동은 이름의 유래처럼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개발에 의해 자취가 사라진 상태죠. 삼성동은 명당의 요건을 고루 갖춘 지역입니다. 풍수 전문가들은 삼성동이 ‘대모산의 기운과 재물을 뜻하는 물이 감싸고 도는 명당자리’라고 말하죠. 풍수에서는 산의 흐름을 용의 움직임으로 보는데 남쪽 대모산에서 용맥이라고 부르는 좋은 기운이 움직이면서 북쪽으로 올라오다 한강을 만나면서 잠시 멈춰선 곳이 삼성동이라는 해석이죠.

■ 지금의 삼성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삼성동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강남 개발을 빼놓을 수는 없겠죠? 1960~70년대 ‘영동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강남 지역 개발이 시작된 것은 모두 아실 거예요. 서울로의 인구 급증, 안보 문제 등의 이유로 1968년부터 시작된 영동개발은 2,580만 8,000㎡에 달하는 광대한 규모로 진행된 사업인데요. 60년대 당시 사대문 안 면적이 약 1,700만㎡ 정도 됐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였죠. 실로 ‘새로운 서울’을 만들고자 했던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과밀했던 모습은 소설가 이호철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서울은 만원이다’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죠.

“서울은 아홉 개 구에 굉장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380만이 정작 살아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있다” -이호철 ‘서울은 만원이다’-

강남 개발은 화신백화점 재벌 박흥식의 손에서 처음 구상됐습니다. 그는 흥한도시관광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무려 2,410만평의 대지를 아우르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오늘날 강남, 서초 지역뿐만 아니라 관악구, 동작구 일부까지 포함한 대단히 넓은 지역에 새로운 주거지와 경공업지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1966년 1월 서울시가 내놓은 남서울계획이나 같은 해 8월의 새서울백지계획도 ‘박흥식 프로젝트’의 복사판과 같았죠. 박흥식의 계획은 너무 큰 규모와 법적 문제, 시대적 한계 등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강남 개발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정부가 추진한 영동개발은 주거 중심으로 구성된 계획이었습니다. 따라서 상업지역이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 1970년 서울시의 도시계획현황도를 보면 강남역 일대를 제외하고 상업지역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삼릉로(현재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상업·업무지구가 조성되고 주거지 위주의 다른 강남 지역과는 차별성을 가질 수 있었죠.

게다가 1969년 12월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가 준공되고 1983년 강남을 관통하는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삼성동은 상업지구와 주거지구가 혼재된 기존 강남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합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제3한강교’ 작곡 길옥윤 노래 혜은이





강남 개발로 삼성동의 가치가 뛰자 이곳은 각종 사기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 65년 5월 문화재 관리국 재산인 삼성동 선정릉 일대가 ‘남서울개발후보지’로 선정되었다는 풍문을 듣고 이 일대 임야 40만평을 불하 받게 된 대행업자라고 속여 40여명의 협회원을 모집, 매인당 2만원씩의 가입금과 매달 1만원씩의 회비를 거둬 총 700여만원을 가로챈 사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기꾼 일당은 회원모집에 있어서 가입자 1명이 3명의 다른 회원을 모집해야 정회원의 자격을 주는 신종계의 수법을 이용했으며 문화재관리국장명의의 특수개간용지 사용승인서등 관계공문을 위조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서울경제신문 기사를 통해 대서특필됐죠.

■ 삼성동하면 떠오르는 ‘이곳’은 어디일까?




이번에 소개할 첫 번째 장소는 ‘강남의 허파’라고 불리는 선정릉입니다. 선정릉은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계비인 정현왕후가 잠들어 있는 선릉과 11대 임금 중종의 정릉을 합쳐 부르는 말입니다. 이 지역은 세 개의 능이 있다고 해서 삼릉공원으로 불리는데 지금의 테헤란로의 명칭이 바뀌기 전까지 존재했던 삼릉로가 여기서 착안한 것이었죠. 지금은 주변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로 사랑 받고 있는 곳이지만 선정릉은 안타까운 사연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세 곳의 능에는 왕과 왕비의 시신이 없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모두 파헤쳐진 때문입니다. 이 세 곳 중 정릉에서만 시신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요. 이는 왜군이 왕릉을 욕보이기 위해 다른 데서 가져다 둔 시신이라는 반박도 존재합니다. 현재는 나중에 보수할 때 넣은 의복들만 묻혀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장소는 삼성동의 옛 멋을 간직한 봉은사입니다. 봉은사는 통일신라시대 원성왕 10년(794년)에 견성암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사찰입니다.



봉은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와 보우의 역할이 컸습니다. 불교에 심취해 있던 문정왕후는 당대 고승이었던 보우를 총애했습니다. 문정왕후는 보우를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고 봉은사를 선종 수사찰로 지정했습니다. 또한 문정왕후는 폐지된 승과를 부활하고 봉은사에서 승과를 치르게 하죠. 이는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했던 조선 사회에서 이는 완벽한 파격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권력자인 문정왕후의 후원에 의해 강행됐죠. 8년에 걸친 문정왕후의 섭정 기간이 끝난 후 봉은사의 위상은 추락했습니다. 이후 이곳은 많은 묵객들이 드나드는 곳이 됐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등이 이곳을 찾는 명사들 사이에 이름을 올릴 정도였습니다.

삼성동과 봉은사의 밀접한 관계는 많은 이야깃거리도 남겼습니다. 특히 강남개발 당시 정부와 거래한 토지 매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강남개발이 본격화 된 1970년대 당시 봉은사는 사찰 앞에 10만평에 달하는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남서울 개발 지구 지역에 상공부 및 산하기관이 들어설 종합청사 부지가 필요했고 봉은사가 가지고 있던 지금의 삼성동 코엑스 부지땅을 갖기 위해 처분권이 있던 조계종 총무원과 협상에 들어가죠.

때마침 조계종은 정부가 팔려고 내놓은 남산 중앙공무원교육원을 사들여 동국대 교육원으로 쓰길 원했고 금싸라기 땅 10만평은 평당 5,300원씩 모두 5억 3,000만원에 상공부 수중에 넘어갔습니다. 처음 거래가 시작될 때 계약을 맺은 가격은 이 보다 평당 1,000원이 적은 금액이었지만 헐값 매매라는 여론이 일자 인상됐죠.



종파 일부의 반대에도 일사천리로 이뤄진 이 거래는 상당한 의혹을 남겼습니다. 거래된 땅값이 시세에 절반 남짓에 불과하고 매각 과정 또한 석연치 않다는 것이죠.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 간부로 있다 후에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를 지낸 손정목씨는 이 과정에서 당시 정권 실세로 거론되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이 전 부장이 조계종 신도회장을 지냈는데 막후에서 매입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는 해석이었죠. 결국 상공부 단지는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무역센터와 아셈타워, 공항터미널, 한국전력 등이 들어서게 됐죠.

이처럼 정치와 종교, 자본이 한데 얽힌 삼성동 관련 비화는 최근 봉은사가 한국전력 등에 땅의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며 다시 거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계약주체가 실제 소유자인 봉은사가 아닌 조계종 총무원이었던 점을 들며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장소는 ‘명문 중의 명문’ 경기고등학교입니다. 1900년 10월에 설립된 경기고등학교는 1909년 종로구에서 첫 입학생 85명을 받으면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위치로는 1976년 이전했습니다. 여기에는 강남개발을 성공시키려는 정부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데요. 강남개발 첫 시기에 경기고를 강남으로 이전함으로써 중산층들이 허허벌판 강남에 오로지 명문학교에 대한 열망 하나로 이사가도록 만든 것이죠.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을 교훈으로 한 경기고등학교는 고교 입시 자율화 이전 한국 최고의 명문으로 그 위력이 대단했습니다. 한때 ‘경기고등학교 전교 100등도 서울대를 마음 놓고 들어간다’고 할 정도였죠. ‘경기고-서울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KS’ 타이틀은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를 상징하는 마크와도 같았습니다. 경기고는 우리나라 10대 대통령인 최규하 대통령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동문 네트워크를 보유한 학교입니다. 특히 정계와 재계, 법조계, 학계 등에 두루 퍼져 있는 동문들이 대한민국을 지금도 주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명문’ 경기고 담장을 경계로 작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이 골목길은 봉은사 뒤편과 연결되는데 골목길에는 경비소도 있어 ‘잡인들’의 출입을 지켜보는 곳이죠. 이곳이 삼성동을 서울 최고 부촌으로 만든 ‘현대주택단지’입니다. 1958년 현대건설이 조성한 딱 28가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연예인, 재벌들이 자신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6.17대책 이후, 삼성동엔 무슨 일이?

GBC 건설과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건립 등 각종 호재가 이어졌지만 최근 삼성동 부동산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습니다. 6.17 대책과 7.10 대책 등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 때문인데요. 특히 6.17 대책으로 인해 지난 23일부터 강남구 삼성동·대치동·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도 등 강남권 4개 동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되면서 삼성동을 향하던 자본이 인접한 대체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삼성동의 날개가 꺾인 것은 아닙니다. 한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삼성동을 비롯한 강남권에 집을 가지고 있는 집주인들은 “기다리면 결국 또 오르기 때문에 버티면 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결국 정말 필요에 의해 구매를 고민하는 수요자들만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삼성동. 새로운 마천루의 등장과 함께 10년 후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요?

/이종호·정수현기자 차현진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이종호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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