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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혁신을 위한 디자인적 사고

■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R&D 성과가 기업으로 연결돼야

기술자립도 높아지고 혁신 창출

'제품 예쁘게 꾸미는 일' 뛰어넘어

필요를 수요로 바꾸는 디자인 중요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시행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일본은 규제 조치를 해제할 계획이 없어 보인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주력산업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를 겨냥해 이와 관련된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은 반도체 산업뿐 아니라 연구개발(R&D) 분야로도 전해졌다. 글로벌 공급체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기술자립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사태를 복기해보니 R&D 성과가 기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부각됐다. 연구현장에서는 좋은 연구를 하고 있고 기업에서도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지만 서로가 연결되지 못하고 있었다. R&D와 산업을 연결하면 더 좋은 연구성과와 제품이 나올 수 있음에도 R&D와 산업 사이의 기술격차, 즉 데스밸리(death valley)로 인해 시너지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R&D와 시장 사이에 데스밸리가 생긴 이유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연구가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이 최우선의 고려사항이다. 그러다 시장성을 놓치고 연구성과가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되지 못한 것이다. 기업에서는 좋은 기술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당장 산업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기존의 기술을 유지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고 R&D와 시장을 연결해 시너지를 만들어야 기술자립도를 높일 수 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디자인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이라고 하면 제품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인 요소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데지그나레(designare)’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물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를 파악해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디자이너의 임무가 ‘필요를 수요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기술이 가진 본질적 의미를 잘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의 의미와 필요성, 수요를 잘 연결시켜 사용자들이 적합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다.



필요를 수요로 전환시키는 디자인은 혁신기술, 혁신제품의 탄생을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좋은 예시가 다이슨일 것이다. 청소기 브랜드로 잘 알려진 ‘다이슨’은 다이슨 청소기를 개발한 사람이자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다이슨은 산업디자이너 출신으로 그의 디자인적 사고와 감각이 지금의 다이슨을 만들어냈다.

기존의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느낀 그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청소기를 직접 분해하고 문제와 원인을 찾았다. 그가 찾은 문제점은 ‘약한 흡입력’이었고 원인은 먼지봉투와 필터에 있었다. 그는 5,000개 이상의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시도 끝에 먼지봉투를 없앤 진공청소기를 만들었다. 지금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다이슨 진공청소기의 원형이 여기서 탄생했다.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디자인적 사고에 기반한 혁신이 진공청소기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이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서도 데스밸리 극복을 위한 디자인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연구기관의 R&D가 시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R&D에 디자인을 입히자는 것이다. 연구가 다 이뤄진 후에 제품을 예쁘게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 아닌 R&D 기획 단계에서부터 누가, 어떻게 사용할지를 함께 고민해 수요자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죽음의 계곡을 상생의 계곡으로 바꾸고 우리의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려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1년간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기술자립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런 크고 작은 혁신이 모인다면 진정한 기술자립도 머지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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