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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IB씨] 홈플러스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

<2>PEF는 펀드매니저다

[편집자주]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라는 책이 있다. 우리 말로 풀어쓰자면 제조업은 ‘(가치를)만드는 자’, 금융은 이 가치를 ‘뺏는 자’ 정도가 된다. 이 말엔 가치 판단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 태동 이전부터 금융은 늘 뺏는 자로 그려져 왔다. 1598년에 출판된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수전노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금융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없다면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도, 쓰는 돈과 버는 돈의 시차가 있는 다른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금융이 2008년처럼 위기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렛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얼마나 알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친절한 IB씨’는 금융의 첨두(尖頭)라 할 수 있는 투자업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한 코너다.





MBK파트너스가 인수했다면, 그 기업의 주인은 누구일까
언뜻 복잡한 산수가 필요할 것 같은 퀴즈를 하나를 내본다. 2015년 MBK파트너스가 ‘기업가치(EV)’ 약 7조원에 홈플러스를 샀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MBK파트너스는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다. 100% 지분 매입에 쓴 돈은 5조6,000억원이고, 차입금 1조3,700억원은 기존 주주에게서 물려받았다. 지분 매입에 쓴 돈 중 2조9,000억원은 국내 은행에서 빌렸다. 차주는 홈플러스홀딩스와 홈플러스스토어즈. 실제 MBK가 홈플러스 인수를 위해 쓴 돈은 2조7,000억원 가량이다. 주인은 누굴까?

1번, 당연히 MBK. 2번, MBK의 김병주 회장. 3번, MBK의 펀드에 출자한 기관투자자. 4번, 차입금으로 가장 많은 돈을 댄 금융기관. 자, 당신의 선택은?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가 매각에 나섰던 2015년 당시 국내서 2번째로 큰 대형마트였다. 국내 인수합병(M&A) 거래 사상 최대 규모라는 기록을 세웠고,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세운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매각 당시 홈플러스 고양점에 세워져 있던 간판 모습. /연합뉴스


대부분의 선택은 아마도 1번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답이다. 헌데 당시 모든 언론에서 왜 그렇게 보도를 했을까? 그 안에 축약된 속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기업집단’ 홈플러스는 판매점을 거느린 홈플러스스토어즈의 지주회사인 홈플러스홀딩스로 구성됐다.(지금은 홈플러스홀딩스주식회사로 합병됐다.) 이 홈플러스홀딩스의 최대주주는 한국리테일투자주식회사, 한국리테일투자이호주식회사다. 이 최대주주인 특수목적회사(SPC)에 돈을 넣은 펀드가 MBK가 운용하는 블라인드 펀드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주체도 아니다. 법률적으로 정확한 인수주체는 SPC인 한국리테일주식회사다. 실제로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도 이 SPC가 낸다. 결국 법적인 주인은 MBK가 아닌 셈. (기사 제목을 읽다 숨찰 정도인 ‘MBK 블라인드 펀드가 설립한 SPC 한국리테일투자주식회사·한국리테일투자이호주식회사, 홈플러스 7조원에 인수’처럼 달면, 대부분의 독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대신 변명하면 가재는 게 편이라는 비난이 돌아올까? )

질문이 조금은 꼬였다고 의심한 이는 분명 2번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MBK가 인수했다고 하니, 그 MBK의 김병주 회장이 주인일 수 있다는 생각일 터. 실제로 MBK의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의 노동조합이 종종 서울 모처에 있는 김 회장의 자택 앞에서 플래카드와 함께 진을 치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론은 2번도 땡!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 지부원들이 홈플러스를 인수한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의 서울 용산구 자택 앞에서 ‘진짜사장 MBK를 규탄한다’는 내용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매장 매각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실질적인 주인은 김 회장도, 그렇다고 MBK도 아니다. 홈플러스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국민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15개 위원 자리 중 하나가 민주노총 몫이라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사진=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


3번을 정답지로 골랐다면 당신은 누구보다 PEF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이다. MBK는 2013년 조성한 3조원 규모의 3호 블라인드펀드로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블라인드 펀드는 유한책임사원(LP·Limited Partner)인 출자자와 무한책임사원(GP·General Partner)인 운용사로 구성된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MBK‘파트너스’의 사명에 주목할 것이다.) GP가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서를 통해 자금을 모집하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인 LP는 여기에 돈을 댄다. 그렇게 돈이 모이면 GP인 운용사가 10여년간 돈을 대신 굴려주는데, 특수목적법인(SPC)를 통해 기업의 경영권 등을 사들여 실적을 높여 투자차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주요 의사결정마다 GP는 LP에 보고를 해야는 의무가 있다. 쉽게 말해 펀드의 실질적인 주인은 ‘전주(錢主)’인 LP다. 대신 블라인드 펀드가 존속하는 기간 LP는 GP에게 펀드 규모의 1~2%가량의 운용수수료(management fee)를 준다. (GP도 통상 펀드 자금의 1%가량 의무출자(GP Commitment)를 한다. 누구라도 남의 돈은 목숨 걸고 굴리지 않는다. 소위 ‘먹물’을 좀 먹여서 표현하자면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증권사 등이 운용하는 공모펀드에 가입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구조는 똑같다. 우리에게 친숙한 개념으로 고치자면 PEF는 기관투자자의 ‘펀드매니저’인 셈이다. 공모펀드의 전주가 일반인이라면 PEF는 소수의 기관투자자라는 게 다를 뿐이다.



4번을 선택한 이도 있을까? 다지 선다형 문제가 대부분 그러하듯 이 선택지는 함정! 통상 투자는 리스크를 얼마나 감수하느냐에 따라서 선순위(인수금융)와 중순위(전환사채(CB) 등 메자닌(Mezzanine), 그리고 후순위(지분 투자)로 구분되는데, 인수금융은 가장 우선순위를 갖는 투자자다. 소유권은 리스크를 대부분 짊어지는 후순위(지분 투자) 투자자가 쥔다. 당신이 은행에서 매매대금의 60%를 빌려 집을 사도 등기부등본에 이름을 올리는 소유주는 당신인 것과 같은 이치다. (자신 집이 현관만 빼곤 다 은행 것이라는 누군가의 농담을 진지하게 믿진 말자.)

진짜 주인의 '진짜 주인'은 전 세계 '장삼이사'... 당신도 주인이다
법률적으로야 그렇다지만, 철학적(?)으로 따지자면 3번도 ‘반쪽’ 정답이다. 만약 투자학이라는 과목이 있다 치자. 그 과목 시험에서 나온 서술형 주관식 문제라고 하면 100점 만점에 80점, B학점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홈플러스의 인수주체가 MBK가 아닌 펀드매니저일뿐인 MBK가 운용하는 펀드라고 하면, 그리고 전주인 기관투자자가 진짜 주인이라고 하면, 이 진짜 주인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통상 블라인드 펀드의 LP는 최대치가 49명이다. 홈플러스를 인수한 ‘엠비케이파트너스삼호’의 주요 출자자는 우리나라 국민연금(NPS)과 교직원공제회를 비롯해 캐나다연금(CPPIB),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만한 기관투자자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하지 않다고 탓하지 마시라. 사적 계약 사항이라 비밀유지 의무가 부여돼 있다.) CPPIB는 홈플러스 지분 6.44%(2019년 6월말 기준)를 직접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뻔한 답이지만 국민연금의 주인은 우리 국민, CPPIB의 주인은 캐나다 국민, CalPERs의 주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이다. 말 그대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장삼이사(張三李四)’.

더욱이 국민연금은 홈플러스 투자에 대한 리스크 노출 금액인 익스포져(exposure)가 가장 큰 출자자다. 블라인드 펀드뿐만 아니라 홈플러스 투자를 위해 만들어진 7,000억원 규모 공동투자펀드(Co-investment Fund)를 통해 배당 우선권을 갖는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샀다. 알기 쉽게 지분율 방식으로 따지자면 홈플러스 투자에 국한하면 일종의 최대주주인 셈이다.

결국 철학적으로 따졌을 때 홈플러스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이다. 여러분의 돈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다시 MBK에 돈을 불려달라고 투자를 한 셈이니 말이다. 이쯤에서 궁금할 것이다. 여러분의 돈은 잘 불어나고 있을까. MBK와 국민연금을 대신해 알려드린다. 홈플러스에 투자한 엠비케이파트너스삼호는 2015년 27억9,600만달러(한화 약 3조원) 달러로 시작해 5년 만인 지난해 말 기준 49억8,500만달러(한화 약 6조원)으로 덩치가 두 배 불어 있다. 연리로 따지면 31.1%(공정가치 평가에 근거한 내부수익률(IRR) 기준)에 달하는 수익률이다! MBK가 펀드 청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수익을 국민연금에 돌려주는 2025년 즈음엔 얼마로 불어있을지 상상에 맡기겠다. (MBK는 전 세계 사모펀드 중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PEF 중 하나다. 지난 5월 시작 6개월 만에 8조원에 가까운 5호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국내와 해외 기관투자자로 LP를 구성한 국내 PEF는 MBK와 1조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운용하는 VIG파트너스 단 두 곳뿐이다.)

국민 '전용' 펀드매니저도 많다
우리 국민의 돈만 굴려주는 ‘전용’ 펀드매니저도 있다. 풀어쓰자면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교직원공제회, 행정공제회 등 국내 기관투자자로만 출자자가 구성된 PEF다. 지난해 태림포장 매각을 통해 투자원금 대비 2.3배의 돈을 회수한 IMM프라이빗에쿼티(PE)를 비롯해 IMM인베스트먼트, 스틱인베스트먼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 JKL파트너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프랙시스캐피탈, 유니슨캐피탈 등등 수천억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보유한 PEF만 수십여 곳. ‘국민 펀드매니저’의 맏형 격인 IMM PE는 현재 2조원 가량의 네 번째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북미 시장을 제외하면 ‘토종’ PEF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국가 중 하나가 우리나라다.)

물론 그렇지 않은 PEF도 많다. 규모가 작은 PEF의 경우 고액 자산가나 중견기업 오너 등이 출자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조국 가족펀드’로 알려진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다. 코링크PE가 누구의 펀드매니저였을지는 여러분의 판단, 그리고 법원의 판단에 맡긴다.

금융당국도 이처럼 이름표를 뗀 돈이 자본시장에서 흘러다니는 것을 막되, 순기능이 큰 PEF를 옭아매는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2018년 기관투자자 전용 PEF를 만들려고 했었다. 여러분이 주인인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열심히 감시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적극적으로 모험자본을 키우겠다는 게 계획이었다. 저성장·저금리에 주식·채권 시장 등 전통적인 투자자산의 수익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지면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도 사모펀드 등 대체투자의 비중을 늘리고 있던 상황.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시쳇말로 까였고, 사모펀드라는 이름을 쓴 라임과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 등이 터지면서 이제 제도개선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많다.

자. 이쯤에서 묻는다. 당신은 PEF가 막대한(?) 투자차익 혹은 자본이득을 거두는 게 ‘먹튀’ 혹은 ‘부당이득’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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