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일궈 온 포도밭이 수해로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됐어요. 올해 농사는 끝났고 나무라도 살려야 하는데….”
18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인근 하천 옆에서 포도밭을 빌려 경작하는 변흥섭(75)씨는 잎이 바랜 포도나무 3,000주를 보며 목이 메었다. 변씨의 포도밭은 올가을 수확을 불과 한 달 앞둔 지난 6일 폭우에 쑥대밭이 됐다. 어른 키만 한 높이의 포도나무가 완전히 물에 잠긴 탓에 썩은 포도송이는 툭 치기만 해도 우수수 떨어졌다. 물에 떠밀려 온 지푸라기 등 각종 오물이 포도나무에 엉겨 붙어 있었다. 당장 걷어내지 않으면 포도나무 자체가 고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강을 따라 늘어진 포도밭들 모두 상황은 심각했다. 하천 둑 너머라 완전히 수몰되지 않은 건너편 포도밭의 나무들도 생기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포도밭 안에 들어서자 진흙탕이 된 땅과 나무에서 나오는 습기에 갇혀 습식 사우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장화를 신은 다리는 땅에 쑥쑥 빠져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이날 최고기온은 33도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다.
난장판이 된 포도밭에 푸른 조끼를 입은 삼성디스플레이 임직원들이 밀짚모자를 쓰고 쓰레기 봉투를 든 채 뛰어들었다. 삼성디스플레이 임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새 없이 포도밭을 뒤덮은 수해의 흔적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러진 나무를 세우고 밭에 떨어진 생활 쓰레기들을 주워 봉투에 담았다. 봉사자 한 명이 한 시간마다 10m 길이의 포도나무 한 줄에 걸린 오물을 걷어내며 빠르게 복구작업을 도왔다. 땀에 온몸이 젖은 조성호 삼성디스플레이 프로는 “빨리 오물들을 걷어내고 소독을 해야 나무가 살 수 있을 텐데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달 14일과 이날, 19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탕정면 갈산리의 포도밭 복구활동에 나섰다. 조성순 삼성디스플레이 전무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더위가 가신다”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힘을 합쳐 복구활동을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삼성이 수해 복구지원을 위해 제대로 팔을 걷어붙였다. 13~19일 6일 동안 삼성전자(005930)를 비롯한 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009150)·삼성중공업(010140) 등 4개 계열사 직원 450여명은 수해 복구현장으로 달려가 지역주민들과 같이 땀을 흘렸다. 철원에서는 침수가옥 청소, 세탁 지원 등에 나섰고 용인과 평택에서는 농경지 및 비닐하우스 복구, 축대 세우기, 토사 제거 등을 지원했다. 아산에서는 하천(곡교천)변 환경정화활동을, 큰비로 피해를 입은 광주장애인종합복지관과 광주 송정동 등에서도 침수시설 및 침수가옥 청소 등의 활동을 펼쳤다.
삼성전기 임직원들은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비닐하우스 정비, 토지 정지작업 등을 도왔고 삼성중공업은 이번 호우로 특히 피해가 컸던 화개장터를 찾아 토사 및 부유물 제거, 도로 청소 등을 진행했다.
이번 재해봉사활동은 직원들이 먼저 제안하며 이뤄졌다. ‘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돕자’는 직원들의 제안이 퍼지며 봉사단을 꾸렸다. 직원들의 제안에 동참해 백홍주·이봉주 삼성전자 부사장, 김범동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 등 고위임원들도 무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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