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희 작가가 그래피티 방식으로 준비한 벽화 작품은 야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에도 외부 관람이 가능한 작품이 있지만, 실내에 설치된 대다수 작품들은 온라인으로 우선 공개하고 실물을 보실 수 있을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 김성연 부산현대미술관장)
“여수국제미술제가 진행되는 장소는 천장이 높고 개방성이 높아 ‘거리두기 2단계’에서 전시가 허용되는 공간입니다. 방문 관람도 가능하지만, 유튜브 생방송 등 온라인으로도 전시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20여수국제미술제 전시감독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
절체절명의 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1년 이상, 2년씩 준비했던 비엔날레 등 국제미술제들이 휘청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가 8월 29일로 예정했던 ‘국제건축전’을 내년 5월로 연기했고 125년 전통의 ‘국제미술전’도 순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내 최대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최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은 일찌감치 내년으로 연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장르 특화인 대구사진비엔날와 신생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도 내년으로 연기됐다.
그럼에도 코로나19의 위기 상황을 뚫고 “전시는 해야 한다”는 의지가 전국 각지에서 뜨겁다. 우리나라 유일의 ‘자연미술’ 축제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지난 29일 우선 개막했고 국내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부산비엔날레와 대전비엔날레를 비롯해 창원조각비엔날레, 여수국제미술제 등이 착실하게 개막을 준비 중이다. 거리두기 강화 조치의 영향으로 개막식 등의 행사는 불가피하게 온라인으로 대체했지만, 그간 준비했던 전시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렬하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경우 충남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 설치된 야외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실내활동 자제를 강조하는 코로나 위기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숲속 자연과 예술의 만남을 추구하는 야외 전시는 지난 4월 25일부터 진행됐다. 임수미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은 “주제전인 ‘신(新)섞기시대-또 다른 조우’를 주제로 인간과 자연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상생하던 신석기를 상상하며 회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소개했다.
부산비엔날레는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9월 5일 온라인 개막으로 가닥을 잡았다. 올해는 배수아·김숨 등 10명의 소설가와 1명의 시인이 ‘부산’을 주제로 글을 쓰고 이를 미술가들이 작품으로 구현한다. 덴마크에서 입국해 자가격리 기간을 보낸 후 개막을 준비 중인 야콥 파브리시우스 전시감독은 “저자들은 부산을 현실과 역사, 상상의 서사가 혼재되는 장소로 제시했다”면서 “부산 원도심과 영도, 을숙도 등지에서 열리는 비엔날레가 장소의 상징을 통해 다양한 도시의 기억과 역사를 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문화전문가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예술의 ‘지역성’이 강조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산비엔날레는 관심을 끈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강조하는 대전비엔날레는 오는 8일 인공지능(AI)에 주목한 ‘AI: 햇살은 유리창을 잃고’라는 주제로 개막하는데, 온라인 환경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고 전시를 최대한 데이터화해 공유함으로써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전시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예술가들이 AI로 미디어아트, 데이터 등을 빠르게 융합하고 새로운 단계로 진화시키는 만큼 창의력이 더욱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야외 설치가 주를 이루는 조각전시라는 특성이 비엔날레 성사를 가능케 했다.
지붕은 있으나 열린 공간에 가까운 전시장을 확보한 여수국제미술제는 ‘해제(解題) 금기어(Say The Unsaybles)’라는 주제를 내세운 올해 전시에 뱅크시·토마스 스트루스·리 빈유안 등 외국작가를 포함한 국내외 작가 46명과 여수 지역작가 41명을 엄선해 대규모로 개최한다. 오늘 4일 개막해 10월 5일까지 열리는데, 온라인 전시 관람 기능을 강화해 물리적 거리 제약을 극복할 계획이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지만 시간과 비용문제 등 국제비엔날레 참가의 장벽제거나 온라인 채널을 통한 글로벌 홍보 기회 등은 새옹지마 같은 장점”이라며 “그간 지적돼 온 비엔날레 과포화 상황에서 차별적 입지를 확보할 기회”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 교수는 “비엔날레의 관광 및 경제효과는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발견과 평가보다는 기존 인지도 높은 작가에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방문객 급감은 피할 수 없으니 반드시 온라인 관람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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