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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손실나면...혈세로 메우는 ‘뉴딜펀드’

정부 7조 + 민간 13조 규모 펀드

이익이 나면 투자자가 챙기지만

손실땐 세금으로 보전하는 구조

사업연속성 의문...시장원리 왜곡·자율성 침해 논란도

1.5%이상 수익·9% 파격 稅혜택 등 당근책 내놨지만

부동산 등으로 쏠린 유동성 흐름 되돌릴지도 미지수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판 뉴딜 금융지원 방안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오승현기자




정부가 ‘한국판 뉴딜’ 사업을 위한 ‘정책형 뉴딜펀드’에 사실상 ‘원금보장’ 기능이 담겼다. ‘세금으로 투자손실을 보전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여기다 뉴딜펀드 조성작업이 차기 정부 집권 중반기인 오는 2025년까지 진행돼 ‘사업 연속성’도 의문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방안은 △재정이 투입되는 모자펀드 방식의 ‘정책형 뉴딜펀드’ △세제지원책을 담은 ‘뉴딜 인프라펀드’ △제도 개선에 기반한 ‘민간 뉴딜펀드’ 활성화 등 3개 축이다. 문 대통령은 뉴딜펀드에 대해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부동산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에서 생산적인 부문으로 이동시킨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정책형 뉴딜펀드는 원금보장 논란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 날 “정부 재정이 자(子)펀드에 평균 35%로 후순위로 출자하는데 이는 펀드가 투자해 손실이 35% 날 때까지는 손실을 다 흡수한다는 얘기”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 또한 “정부가 원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보장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 및 성격을 가진다”고 말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정책형 뉴딜펀드의 이익은 투자자가 고스란히 가져가는 반면 손실은 세금으로 메우게 되는 셈이다.



정부가 내놓은 한국판 뉴딜의 핵심은 정책형 뉴딜펀드 신설이다. 정부가 투자 리스크를 부담해 민간 참여자의 원금을 사실상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향후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정부가 떠안는 구조여서 당장 자본시장을 왜곡하고 시장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반 남은 상황에서 5년간 정부·정책금융기관·민간금융기관 등의 출자를 기본으로 한 계획이 다음 정부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높다. 정부는 국민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세제혜택 및 1.5% 이상의 수익률까지 내세웠지만 뉴딜펀드가 주식·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신설되는 정책형 뉴딜펀드는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출자금을 바탕으로 민간자금을 끌어들이는 구조다. 향후 5년 동안 정부가 3조원, 정책금융기관이 4조원씩 출자해 모(母)펀드를 만들고 모펀드 아래의 자(子)펀드는 모펀드 출자금에 민간자금 13조원을 매칭해 총 20조원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모인 자금은 뉴딜 관련 창업 벤처기업, 뉴딜 관련 민자사업, 프로젝트 등에 투자된다. 투자 방법은 주식 및 채권 인수, 메자닌증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등) 인수, 대출 등이다.

펀드의 가장 큰 특징은 펀드 자금의 35%인 모펀드가 후순위채권 등 위험성이 높은 투자를 맡고 민간자금이 선순위에 투자한다는 데 있다. 즉 민간투자자가 가입한 뉴딜펀드가 최대 35% 손실이 나지 않는 한 원금이 보장되는 것이다. 다만 자펀드의 성격, 정책적 중요성에 따라 모펀드의 매칭 비율은 조정된다.

뉴딜펀드의 목표수익률은 국고채 금리보다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1년짜리 예금이자가 0.8%, 국고채 3년물이 0.923%, 10년물이 1.539%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뉴딜펀드는 그린·디지털사업에 투자하고 상대방이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손실이 (크게) 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정부가 평균 35%를 후순위 출자하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원금이 보장된다고 명시하지 않지만 사후적으로 원금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뉴딜펀드 조성 계획을 추진하면서 원금보장과 함께 3% 안팎의 수익률을 제시했다가 반시장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수익률은 이보다 줄었지만 정부가 결국 세금을 투입해 투자자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는 그대로여서 여전히 시장의 자율조정기능을 침해한다는 평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들은 투자할 때 손실이 날 수 있는 펀드로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결국 정부가 위험을 떠안은 것”이라며 “이익이 날 거라고 하면 굳이 정부가 나서서 (뉴딜펀드를 신설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뉴딜펀드가 제대로 운영될지 불투명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이날 5년간 총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조성하는 방안 외에 5년간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100조원의 뉴딜금융을 지원하는 계획도 밝혔다. 이를 통해 정책금융기관의 연간 자금공급액 중 뉴딜 분야 비중을 오는 2025년까지 1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에서는 다음 정부에서도 정책이 계속 이어질지는 모르겠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이날 뉴딜펀드에 대한 투자자 참여를 높이기 위해 세제혜택도 제시했다. 뉴딜 인프라펀드에 대해 투자금액 2억원 이내의 배당소득 세율을 14%에서 9%로 낮추고 분리과세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뉴딜 인프라펀드는 정책형 뉴딜펀드의 자펀드 방식의 민간금융기관·연기금을 중심으로 조성된다. 단 세제혜택은 뉴딜 분야 인프라에 절반 이상 투자하는 공모 인프라펀드로 제한적이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억원 한도에 5%대의 저율 과세를 적용하는 내용으로 발의한 법안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인프라펀드가 갖는 특성상 이 정도 유인을 줘야 뉴딜펀드로서 작동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정부 세제상 적정 규모의 지원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혜택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뉴딜펀드 외에도 배당소득에 9%의 과세를 적용해주는 상품은 다수 존재한다. 이 때문에 뉴딜펀드가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중에 아무리 유동성이 풍부해도 펀드 수익률이 나와야 사람들이 투자할 것”이라며 “정부가 후순위로 간다고 하지만 그건 손실이 났을 때고 펀드가 투자하는 뉴딜 프로젝트가 얼마나 수익성이 있을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와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펀드’ 조성 방안을 놓고 다시금 금융권이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 펀드라고 강조하지만 금융산업은 전형적인 규제산업인 만큼 금융기관이 사실상 정부의 눈치를 보며 비자발적 참여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뉴딜펀드가 민간의 팔을 비틀어 생색은 정권이 누렸던 이명박 정부의 ‘녹색펀드’,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처럼 시작만 화려했던 ‘관제펀드’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의 뉴딜펀드 조성에 금융투자 업계는 겉으로는 환영의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인 참여를 다짐했으나 속내는 복잡하다. 일단 부담이 만만치 않다. 업계에서는 이미 기간산업안정기금·증시안정기금 등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출자해왔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출만기와 이자상환 유예를 6개월 추가 연장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나올 때마다 화답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산업은 여전히 관치와 규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집권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어떤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는 의석 구조여서 금융기관은 정부의 눈치를 더욱 살핀다. 이런 상황에 나온 대규모 투자 계획을 민간이 거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익명의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식의 정책펀드 나올 때마다 부실이 생길 수도 있고,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지 않을 리스크도 있다”며 “은행에서 판매하다가 불완전 판매 이슈가 또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원금 손실을 은행이 모두 보상하라고 권고한 라임펀드 사태를 예로 든 것이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면 코로나, 뉴딜이면 뉴딜, 이렇게 금융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면 금융사들이 지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달라”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뉴딜펀드처럼 정부가 앞장섰던 관제펀드가 용두사미로 끝난 점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는 40개가 넘는 녹색펀드가 출시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 이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에 통일펀드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들 펀드는 출시 직후 정부의 지원 아래 자금이 몰렸고 수익률도 고공행진을 했지만 정권교체 이후 동력이 끊기면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대부분의 자금이 이탈하면서 펀드 규모는 쪼그라들었고 수익률도 저조한 상태다. 펀드 출시에 따른 성과는 정부 차원의 치적으로 평가받지만 투자했던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오히려 나빠졌다. 비판은 금융기관이 질 수밖에 없어 민간의 고민은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뉴딜펀드가 투자하는 대상을 세밀히 살펴보면 투자자들이 만족하는 수익을 낼지 의문이다. 정부가 뉴딜펀드의 투자 대상으로 예를 든 신재생에너지나 수소경제 등은 아직 사업 초창기에 불과한데다 최근 유가 하락 추이 등을 감안하면 존속기간(5~7년) 내에 일각에서 거론됐던 3%가량의 수익률을 거두기는 쉽지 않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3일 정부의 정책형 뉴딜펀드 설명자료에 따르면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는 뉴딜 프로젝트와 뉴딜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로 수익을 낸다.

정부는 뉴딜펀드 투자 대상의 예로 △수소충전소 구축과 같은 뉴딜 관련 민자사업 △신재생에너지시설과 같은 뉴딜 인프라 △수소·전기차 개발 등 뉴딜 관련 프로젝트 △뉴딜 관련 창업·벤처기업을 들었다. 정부는 주식이나 채권 인수, 메자닌증권(신주인수권부사채 등), 대출 등을 통해 투자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투자 대상은 첨단제조·자동화 등과 관련된 ‘디지털뉴딜’과 기후기술 보유 기업 및 에너지산업 기업 등이 포함된 ‘그린뉴딜’로 나뉜다.

문제는 수익률이다. 정부는 이번 뉴딜펀드 신설과 관련한 자료에서 예상 수익률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했듯 3%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공개한 ‘탈원전 정책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등 대체에너지의 단가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단가보다 저렴해지는 이른바 ‘그리디 패리티’는 오는 2047년에나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산화탄소 저감 등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기업 입장에서는 여전히 화석연료 에너지 사용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시로 든 수소차 또한 판매량 부진 등으로 당분간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수소전기차는 지난 7월 누적 판매량 1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수소전기차 출시 7년 만으로,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시장과 비교해 성장세가 더디다. 정부가 뉴딜펀드 투자 가능 기업으로 ‘녹색인증기업’ 등을 들었지만 투자 대상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투자 대상이) 구체적으로 설정돼 있지 않지만 투자 가능한 뉴딜 프로젝트를 최대한 정부가 발굴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양철민기자, 김지영·이지윤·김광수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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