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외교부 고위급 인사들이 이달 들어 쉬지 않고 미국을 방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행보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남북·북미 대화 재추진 작업은 우리 정부가 최근 우리 공무원 해상 피격 사건과 관련해 더 이상의 대북 압박과 규탄을 자제하는 상황과도 맞물린 게 아니냐는 분석이 곳곳에서 나온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7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상무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싱크탱크 인사 등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한미 간 주요 현안 및 역내 정세 등에 대해 협의했다”며 “이번 방미를 통해 우리 측은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 행정부 및 조야의 한미동맹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양자 현안과 함께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고 덧붙였다.
김 차장 방미는 사실 공개 일정이 아니라 국민들 모르게 극비리로 이뤄졌다. 청와대가 이날 해당 사실을 확인한 것도 김 차장 방미와 관련한 언론보도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외교가에서는 김 차장 방미 시점이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가 오고 간 직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5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달 8일 김정은에게 “국무위원장께서 재난의 현장들을 직접 찾아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고 피해복구를 가장 앞에서 헤쳐 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깊은 공감으로 대하고 있다”며 “특히 국무위원장님의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에 김정은은 12일 “오랜만에 나에게 와 닿은 대통령의 친서를 읽으며 진심 어린 위로에 깊은 동포애를 느꼈다”며 “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이후 청와대는 15일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유엔총회 연설을 녹화하고 김 차장을 미국으로 보냈다. 종전선언을 위한 대화 재개를 위해 최근 남북미 간 물밑 작업이 상당히 진행됐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다만 김 차장은 이날 본지 취재진에게 “종전선언과 관련 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는 분석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달 들어 미국을 방문한 인사는 김 차장뿐이 아니다. 청와대 출신인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지난 9∼12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등을 만났다. 당시 최 차관은 “10월 중순을 목표로 한미 ‘동맹대화’ 신설에 합의했다”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긴밀히 협의하겠다”며 27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본부장은 이날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 현재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며 “비건 부장관과 만나 대화 재개를 통해 한반도에 완전화 비핵화와 평화정착 과제를 어떻게 추진할 지 긴밀하게 협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방한을 계기로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한 포석을 두고 있는 게 아니냐고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신형 전략 무기를 선보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10월10일 노동당 창건일과 11월 미국 대선 전에 한반도 전략의 진전을 이루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공무원 피격 사건 이후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보이는 잇딴 대북 유화 제스처와도 연계가 됐다는 진단이다. ‘이쯤에서 논란을 끝내자’는 김 위원장의 제안을 사실상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윤경환·허세민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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