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투기자본, 소액주주 내세워 배당 압박...'월스트리트 워크' 부추겨

[기업이 국부다]

<상>정부가 떠받드는 '주주가치론'의 허상

주주 보호한다는 '기업 규제 3법'

투기세력에 기업공격 정당성 부여

국가 경제·장기투자자 피해 불러

민주당의 맹목적인 주주가치론은

기업 성장 전략 방해 '역효과'만





지난 2018년 헤지펀드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3사 지분 10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하면서 현대차그룹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일부 사업부문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시키는 등 해묵은 과제인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한 상태였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지주사 체제 전환, 자신들이 선정한 이사 선임, 8조3,000억원에 달하는 초고배당 등 무리한 요구조건을 들이밀면서 공격에 나섰다. 당시 엘리엇이 내건 명분은 ‘주주가치 제고’였다. 엘리엇의 공격으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무산됐다. 엘리엇은 자신들이 요구한 이사선임안과 초고배당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올해 초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투기세력, 단기차익만 누리고 빠져나가

정부 여당은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상법·공정거래법 등 기업규제 3법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가 결과적으로는 단기 투기세력이 우리 기업들을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귀를 닫고 있다. 투기세력은 우리 기업들을 상대로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요구해 단기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가는 반면 우리 기업은 이들과의 표 대결을 위한 지분을 매입하거나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율의 배당을 함으로써 장기투자 여력을 상실해 결과적으로는 국가 경제와 장기투자자의 피해로 귀결되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들은 ‘주주가치론’을 전제하고 있다. 기업은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주주가치론은 오히려 투기자본들에 우리 기업을 공격할 명분과 도구만 제공하고 정작 기업의 고유한 가치에 기반한 장기적 성장 전략을 방해하는 편향된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창업자 또는 기업의 경영인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기업을 영속적으로 성장시키길 원하는 반면 일반 주주들은 단기적인 주가상승이나 고배당을 추구하다 보니 기업의 지속적 성장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주가치론, 단순 투자자에 권한 부여

실제 글로벌 기업들은 주주가치 극대화만을 경영 비전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경영자들은 창업 때 품었던 자신만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가치를 중첩적으로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의 이익 추구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창업자 또는 경영인과 주가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투자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얘기다. 하물며 투기자본은 말할 것도 없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저서 ‘기업이란 무엇인가’에서 “경영인 주주와 달리 일반 주주는 자신의 미래를 기업의 미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며 “기업은 단기적으로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라면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주가치론을 전제로 한 정책은 이런 기업의 자기목적성을 부정함으로써 기업 활동에 제약을 가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수주주들은 기업이나 경영자의 가치를 평가해 주식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단순투자자이며,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날 수 있는 투자자라는 것이다.

주주가치론은 고용확대 등 현 정부의 핵심 정책과도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주주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단기 이익을 늘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용축소 등을 통한 비용절감이기 때문이다.

주주가치론은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단순 투자자에게 책임을 넘어서는 권한과 이익을 부여하는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주주는 등기이사에 준하는 법적인 규제를 받는 반면 일반 주주는 경영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이 보유한 주가가 떨어지는 제한적인 손실만 보고, 언제든 주식을 팔아치울 수 있는데도 주주가치론은 이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주주가치론은 헤지펀드들의 주주행동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업의 영속성을 부정하고 단기차익만 누린 뒤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는 월스트리트 워크(Wallstreet walk)를 부추긴다”며 “소수주주들이 대주주를 견제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자칫 이런 제도를 악용해 투기자본이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