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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업
[이건희 별세] 27년전 '굴욕'이 일궈낸 '삼성TV 신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전시회(CES 2010)를 찾아 가족과 함께 전시장을 참관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 전 회장, 부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차녀 이서현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연합뉴스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전자제품 유통매장인 ‘베스트바이’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삼성 TV가 소니·도시바 같은 일본 제품에 치여 한 귀퉁이에서 먼지만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삼성전자(005930) 임원들을 불러 혼쭐을 냈다. 이 회장은 곧바로 전략회의에서 “전자 계열사 사장들은 삼성제품이 미국에서 천덕꾸러기 신세임을 알게 됐을 것”이라면서 “2·3등 회사는 미래가 없으니 앞으로 일류 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라”고 질책했다.

이 회장이 베스트바이에서 받은 충격은 오늘의 ‘가전 강자’ 삼성전자를 만들었다. TV 사업부는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만년 적자 부서였다. 세계 최대 시장인 북미(미국·캐나다)에서는 바닥을 맴돌았다. 현지 시장조사업체가 TV 업체 순위를 13위까지 발표하던 시절, 삼성전자는 12위였다.

이 회장은 TV 부문의 집중 육성을 주문했다. 휴대폰·가전 등 삼성전자의 다른 전자제품 성공을 위해서라도, 대중 친밀도가 가장 높은 TV 시장 정복은 필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잘나가던 반도체사업부의 엔지니어 300명을 TV사업부로 재배치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브라운관에서 평판(LCD나 PDP) TV 쪽으로 이동해 가는 대전환 시기에 앞선 기술력을 확보하면 판을 바꿀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동안의 마케팅 방식에 대해서도 쇄신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디자인을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진단이 계기가 됐다. 평판TV 시대로 접어들면서 소비자들은 TV의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삼성전자는 2006년 보르도 TV를 내놓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와인잔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명품 와인의 원산지인 ‘보르도’에서 이름을 따왔다. 고정관념을 깬 이 제품은 삼성전자 TV를 베스트바이 등 유통점에서 인기를 끌었고, 출시 첫해에만 250만대가 팔렸다.



삼성전자는 보르도TV의 성공을 발판삼아 2008년에 장미꽃을 형상화한 ‘크리스털 로즈 TV’로 연타석 히트를 쳤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성공에 멈추지 않고 2008년 하반기 TV 기술의 트렌드를 바꿔버릴 혁신 제품을 준비한다. 기존의 광원으로 쓰던 형광등 대신 LED를 쓴 LED TV를 내놓는다. LED는 전력 소모가 적으면서도 화질을 더욱 밝고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강점이었다. 또한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경쟁사들도 뒤늦게 LED TV를 내놨지만 삼성전자의 아류작 취급을 받았다. 매년 새로운 개념의 TV를 내놓으며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삼성전자는 세계 TV 시장에서 2007년부터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전자 TV 굴욕의 진앙지였던 미국 유통점에서의 대접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연휴에 여는 특별 할인행사에서는 고객들이 아귀다툼을 하며 사려하는 제품 중 하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 틈에 끼여 고사 직전까지 갔던 한국 TV를 세계인이 다시 보게 된 데는 삼성전자와 이건희 회장의 발 빠른 대응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세계 최대 가전 전자쇼인 CES 2007에서 공개된 삼성전자의 ‘보르도’ TV./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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