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님
잘 있으라는 작별의 말씀도 없이 이렇게 홀연히 떠나시는 것입니까? 병상에서 일어나시어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만을 기다렸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시니 슬픔과 충격을 주체할 길이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장님은 반도체 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하신 기업인이셨습니다. 회장님은 우리나라에서 전자제품을 가장 많이 구입하고 분해하셨을 정도로 무수한 전자기기를 다루시어 일찍이 반도체의 중요성을 깨달으셨습니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살 길은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반도체 산업이라는 확신을 얻고 사업을 결심하셨습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크고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사업이기에 그룹 차원의 추진이 어렵게 되자, 직접 사재를 털어 작은 반도체회사를 인수해 사업을 추진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젓가락 문화라 손재주가 좋고 주거생활에서 청결을 중요시하기에 반도체 산업에 적합하다며 가능성과 당위성을 설파하셨습니다. 반도체를 향한 회장님의 열정과 노력은 마침내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진출이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회장님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결단력과 리더십을 발휘한 승부사이셨습니다. 1987년 4메가 D램 개발방식에서 회로를 위로 쌓는 스택으로 할 것인가 밑으로 파는 트렌치로 할 것인가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회장님께서는 스택으로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후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경쟁사들은 대량생산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율 하락을 경험했고 이는 후발주자였던 삼성이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하셨습니다. 국제화 시대에서는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된다고 하시며 장장 68일 동안 1,800명의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지셨습니다.
1995년 삼성전자 구미공장에서의 ‘불량제품 화형식’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선전화 제품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높아지자, 불량을 근절하자는 회장님의 단호한 의지 하에 15만대의 무선전화기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임직원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한 결의가 느껴졌으며 국민들에게도 회사의 철저한 반성과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전해졌습니다.
이건희 회장님,
오늘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의 시대’로, 패자에게 도움의 손길도 보호해줄 이념도 사라졌다는 회장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2등 정신을 버리십시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후배들은 회장님의 그 큰 뜻을 소중히 이어받아 일등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이제 무거웠던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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