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끝나자마자 여야가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을 두고 정면으로 맞설 조짐이다.
‘특검·공수처’ 동시 처리를 제안한 국민의힘이 미루던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 2명을 내정하며 공수처 출범을 위한 국회의 논의는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여당이 일관되게 ‘특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다 각자 제출한 공수처 법안마저 달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검은 막히고 공수처 논의 테이블이 엎어지면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두고 파행을 거듭한 국회가 재현될 우려마저 나온다.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고 ‘밤샘 규탄대회’를 예고했다. ‘철야 규탄’에도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장외투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27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 위원에 임정혁, 이헌 변호사를 각각 공식 추천한다. 민주당은 앞서 국민의힘에 26일까지 추천 위원을 선임하라고 이른바 ‘데드라인(마감시한)’을 제시했다. 넘기면 174석의 힘으로 법을 개정, 통과시킨다는 압박했고 국민의힘이 후보 추천위원을 추천한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7월 김종철 연세대 교수와 박경준 변호사 2명을 선임했다. 이로써 공수처장 후보(2인)를 추천하기 위한 추천위원회 구성(여 2·야 2·법무부 장관·법원행정처장·대한변협 회장)은 마무리됐다.
더 큰 싸움은 지금부터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추천위원이 공수처장 후보를 반대하고 나서면 또 출범은 지연된다. 여야가 지난해 합의한 법안 초안에는 공수처장 최종 후보 2인은 ‘위원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돼있다. 야당 추천위원이 반대에 나설 경우 통과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법안을 발의한 김용민 민주당 의원도 “공수처출범저지 2단계에 돌입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전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이 내정한 2명의 추천위원 가운데 이헌 변호사를 가리켜 “내정된 것으로 보도되는 한 분은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방해한 의혹으로 고발당했다”며 “혹시라도 (국민의힘이 야당의 거부권을) 악용한다면 국민이 용납하지 않고 우리 당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또다시 시간 끌기를 한다거나 꼼수 전략으로 나온다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더욱이 국민의힘은 유상범 의원이 대표로 공수처법을 따로 발의한 상태다. 당론으로 발의된 이 법에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범위에 직무범죄(직유유기 등)을 빼고 부패범죄로 한정했다. 검찰과 경찰 등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범죄 수사를 인지했을 때 공수처에 강제 통보하는 내용과 공수처 검사가 기소권을 가지는 권한도 삭제했다. 법안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더라도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공수처 법안 처리에 ‘라임·옵티머스’ 특검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수처와 특검을 동시에 처리하자”고 수차례 제안했다. 이와 함께 공석인 청와대 특별감찰단, 북한인권재단 이사도 한 번에 선임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사기 특검은 불가하다”는 민주당이 기존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은 낮다.
야당은 특검법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공수처와 특검이 따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고 당 내외에서는 “대여 투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과 장제원 의원 등 보수진영 인사들이 “특검에 진퇴를 걸라”며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특검을 받아내지 못하면 김종인 비대위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전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새로운 수사팀을 구성하고 이들이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조사케 한들, 그 결과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 사태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우리 당이 제출한 특검법 수용을 정부·여당에 강력히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를 찾은 최재성 정무수석을 향해 “대통령이 저희들을 대단히 무시한다”며 “답답해서 (직접) 만나보자 요청하려고 한다”며 질의서를 ‘라임·옵티머스 특검’의 필요성을 담은 질의서도 전달했다 . 국민의힘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의원들의 ‘철야 규탄 릴레이’를 예고했다.
174석의 민주당이 야당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공수처 법안을 힘으로 처리할 가능성도 열려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을 처리하기 위해 4+1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힘을 빌렸다. 하지만 현재는 민주당만으로도 가능하다.
여당이 독자 처리에 나서면 국민의힘은 장외투쟁도 불사할 가능성이 크다. 원내 협상이 결렬되면 통상 국회 로텐더홀과 본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하고, 그래도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장외로 나가 시위나 집회로 이어지는 것이 야당의 투쟁이다.
국민의힘이 장외로 나가면 여야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공수처법·선거법 등)’을 두고 극단적으로 대치한 지난해 11월과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지난해 황교안 전 대표는 “패스트트랙 반대”를 외치며 단식에 돌입했고 소속 의원들은 릴레이 삭발을 하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민생법안의 심사는 밀렸고 올해 예산안은 정기국회 종료를 3시간 남긴 12월 10일 밤에 제1야당인 당시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채 넘어갔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라임·옵티머스 사기로) 피해를 본 국민이 수천 명인데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 사건을 들춰내야 한다”고 말했다.
/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