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고전통해 세상읽기] 낙이불음(樂而不淫)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흥겹고 자극적이지 않은 나훈아 노래

삶의 무게를 웃음·춤으로 승화시켜

김창완 음악은 추억과 이야기 소환

두 노장 귀환에 올 가을 풍성함 느껴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우리나라와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제 K팝은 어쩌다 한 번씩 세계인의 주목을 받다가 어느 순간에 잊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의 노래와 춤을 즐기고 위로를 받는 위상을 차지했다. 세계 대중가요 시장에서 K팝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하나의 영역을 굳건히 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과 10월에는 나훈아와 김창완이 신곡을 발표해 대중가요 시장에 아이돌만 있지 않고 노장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각인하고 있다. 나훈아는 8월20일에 ‘아홉 이야기’로 신곡을 발표했다가 추석특집 공연에서 신의 등장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선보이며 이전의 히트곡과 신곡 ‘테스형’ 등을 불러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테스형’은 무슨 문제가 있으면 “테스형에게 물어봐”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김창완은 이달 18일 37년 만에 솔로앨범 ‘문(門)’을 발표해 그의 노래를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공연 소식이 없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을 기회가 없었지만 신곡은 이전의 노래처럼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나훈아와 김창완은 창법, 무대 공연이 확연히 달라 섣불리 같은 점을 찾으려고 해도 쉽지 않다. 나훈아는 극적인 무대와 가성으로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린다. 김창완은 기타 하나로 무대에 서서 읊조리는 듯 이야기하는 듯 특유의 창법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신곡을 보면 두 사람은 숱한 경험과 쌓인 내공을 유감없이 드러내면서도 이전과 다른 시도를 하고 또 1960~1980년대의 인생사를 노랫말과 가락에 살려내고 있다. 공자의 말을 빌린다면 나훈아는 ‘즐겁고 흥겹지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자극이지 않은’ 낙이불음(樂而不淫)의 흥을 보여주고 김창완은 ‘슬프고 애잔하지만 우울하여 사람을 무너지게 하지 않은’ 애이불상(哀而不傷)의 위로를 건넨다.

나훈아는 ‘명자’에서 “자야자야 명자야 불러샀던 아버지, 술 심부름에 이골났었고, 자야자야 명자야 찾아샀던 어머니, 청소해라 동생 업어줘라”며 누이가 아버지 심부름에다 동생을 돌봐야 했던 고단한 시대를 노래한다. ‘웬수’에서 “떠나가는 저 사람에겐 미련 같은 건 없는데, 왜 이럴까 왜 우는 걸까 바보처럼 왜 이러는 걸까, 딱 한 가지 딱 한 마디, 딱 한 글자 정, 정이 웬수야”라며 정 때문에 울고 웃던 인생을 노래한다. ‘테스형’에서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이라며 힘든 인생사의 원인을 소크라테스에게 하소연하고 또 묻는다.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이미 답을 듣지 못하리라는 걸 알지만 묻지 않고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묻는 것이다.



김창완은 ‘노인의 벤치’에서 “시간은 모든 것에 무관심했지만 추억을 부스러기로 남겼지, 가끔은 생각이나 지나온 날들이, 그 시간들이 남의 것 같아”처럼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은 상황에서 시간을 화두로 삼는다. ‘이제야 보이네’에서 “이제야 보이네 아버지 자리 떠난 지 칠년, 이제야 보이네 어머니 자리 누우신 지 삼년, 술에 취해 걱정 말라시던 그 무거운 어깨를 누가 아나”처럼 고단한 삶의 무게로 몸뚱아리 하나로 지탱했던 부모를 소환한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에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사랑한다고 당신이 잠든 밤에 혼자서 기도했어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행복했다고 헤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하나였다고”라며 사랑한다는 말조차 하기 어려워하던 보통 사람을 노래한다.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면 고단한 삶의 무게를 웃음과 춤으로 승화시키는 흥겨움이 돋아난다. 김창완의 노래는 그간 잊고 있던 추억과 이야기를 소환시키며 삶의 애잔함을 위로한다. 두 노장의 귀환으로 낙이불음과 애이불상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2020년의 가을은 풍성함을 느끼게 한다. 노장이 세월의 무게에 은퇴를 생각하겠지만 현역으로 오랜 활동을 바라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