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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좋았던 것 그대로 둔 제주 '집'으로 초대합니다

'듀송플레이스' 송이슬, 김민호 부부

휴가차 온 제주와 사랑에 빠져 5년전 이주

큰 창, 심어져 있던 나무들 그대로 보존

살던 집, 사무실 겸 카페 '식물집'으로

"우리가 그랬듯 여기 머무는 이들 모두

자연에게 위로받고 치유받는 경험했으면"

‘듀송플레이스’의 송이슬, 김민호 부부는 최근 살던 집을 고쳐 제주 서귀포에 식물가게 겸 카페 ‘식물집’을 열었다. 기존 골조나 구조 등 살면서 좋았던 것들은 그대로 둔 공간엔 이름처럼 초록빛 생명력이 넘친다. /박성욱작가




대문을 열고 한발짝 들어서면 좌우로 정원이 있다. 가만가만 작은 나무들을 살피며 걸으면 부부의 추억과 온기가 깃든 공간을 만난다.




풀내음, 솔내음, 흙내음이 이토록 그리운 적이 있었던가.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날들이 쌓여갈수록 ‘밖’을 향한 갈망은 깊어만 간다.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데 자연 만한 게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나무들, 사계절 내내 화려한 정원도 물론 아름답지만 요즘은 사람 손길이 덜 닿은 풍경이 간절하다. 억지로 덧대거나 무리하게 다듬지 않은 자연 속엔 햇살도 바람도 쉬어갈 ‘틈’이 있다. 틈은 숨이요, 쉼이라. 답답한 일상을 버텨낼 힘이 된다.

송이슬·김민호 부부는 5년 전 제주로 내려왔다. 숨 쉴 ‘틈’ 없던 도시살이에 지쳐 휴가차 온 제주의 풍광과 사랑에 빠진 덕분이다. 오름을 오르고 올레길을 걸으며 찬찬히 들여다본 제주는 울창한 억새밭, 현무암 가득한 돌밭 등 여러 빛깔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조경을 업으로 삼아 생활하던 부부조차도 낯선 매력을 느꼈다.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집 안에서도 제주를 오롯이 느끼고 싶었던 부부는 남쪽으로 난 마당에 귤나무들이 자라고 목재 창으로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낮은 기와집을 새 터전으로 삼았다. 삼나무, 비파나무, 무화과 나무가 어우러진 부부만의 작은 숲에선 시간마저 천천히 흘렀다. 이사한 이후 집은 ‘사랑방’이 됐다. 둘만 느끼기엔 이 평화로움이 너무 아까워서 지인들을 자주 초대했다. ‘힐링’하고 간다는 친구들의 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부부가 살던 집은 누구에게나 열린 식물 카페 ‘식물집’이 됐다.

살면서 좋았던 것들을 나누기 위해 마련한 공간인 만큼 자리를 지키던 나무들, 아늑함을 더해준 창문과 옛 문틀까지 그대로 뒀다. 덕분에 눈 닿는 곳 어디든 초록빛 생명력을 뿜어내는 ‘식물집’엔 특별한 추억의 온기가 서려 있다.

송이슬·김민호 부부는 ‘듀송플레이스’라는 이름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조경학을 전공하고 설계회사에서 수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조경스튜디오를 차린 것이다. 제주의 자연에 매혹돼 이주했지만 처음부터 조경스튜디오를 운영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집에 드나들던 지인들의 ‘정원을 꾸며달라’는 부탁이 하나 둘 늘어 주말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을 넘어선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부부는 그간 디자인 스테이 ‘와온’, ‘선흘아이’, ‘스테이일미터’, ‘스테이소도’ 등의 조경 디자인 및 시공을 진행했다. 정원의 컨셉부터 계획, 설계, 시공까지 도맡아 작업하는 건 가끔 고되기도 하지만 ‘참 잘한 선택’이라며 웃었다. 잘 자라주는 생명체들을 가까이서 보고 있노라면 사계절 내내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서다.

‘식물집’ 정원 한켠엔 온실이 마련되어있다. /박성욱작가


-살던 주택을 고쳐 카페 겸 사무실인 ‘식물집’을 열었다. ‘식물집’이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기존 듀송플레이스 사무실 내부에 화분과 자재들을 보유한 공간이 작게 있었다. 조경공사를 하면서 플랜테리어 작업을 함께 했기 때문에 마련한 곳이었다. 알음알음으로 필요한 화분이나 식물을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 그 공간에 ‘식물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늘면서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분들이 쉬어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가 그랬듯 머물며 자연으로 치유 받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 치유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고민할수록 살던 집 만한 곳이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집에 사는 동안 지인들을 자주 초대했던 것처럼 식물을 좋아하는 분들 누구나 새로운 ‘식물집’으로 초대하겠다는 작은 욕심이랄까. 기존에 운영하던 식물집은 식물과 화분만을 파는 공간이어서 더 편한 마음으로 드나들 수 있게 식물도 보고 차 한잔하며 쉬어갈 수 있게 꾸몄다.

김민호(오른쪽) 소장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송이슬 소장이 분갈이를 준비하고 있다. /박성욱작가


‘식물집’엔 창이 많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창밖의 자연을 마음껏 눈에 담아가길 바라는 부부의 바람이 반영됐다.


조경스튜디오 ‘듀송플레이스’가 운영하는 카페답게 ‘식물집’에서는 여러 식물과 다양한 화분을 구매할 수 있다.


-살아보니 좋았던 것들을 그대로 두는 데 공을 들였다.

△주택 남쪽 넓은 마당엔 귤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삼나무와 비파나무, 무화과 등이 어우러져 작은 숲 같은 느낌이었다. 진입로를 기준으로 기존 공간인 좌측 정원과 잘 어우러지도록 우측의 도로 포장을 철거하고 녹지를 조성했다. 호주 아카시아 종류 등 왼편보다는 조금 서구적인 느낌이 나는 새로운 나무들을 식재했다. 두 개의 다른 정원을 하나의 경관처럼 보이도록 하부에 그라스를 심고 바닥면에 우드칩을 포설해 차분하고 잔잔한 분위기에 초점을 뒀다.

건물도 남향이라 집엔 항상 햇살이 쏟아졌다. 조경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햇볕이다. 같은 조건의 같은 식물이라도 양지와 음지에 따라 자라는 속도나 크기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많이 보아온 터라,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창문 틀, 방과 방 사이 넓은 미닫이를 살리고 길쭉한 복도, 방의 구조나 건식과 습식으로 나뉜 두 개의 화장실 등 기존 주택의 구조도 유지했다. 창틀과 목재문틀의 반영문양과 격자문양은 ‘식물집’의 새로운 브랜드 로고에도 반영시켰다.

‘식물집’의 창고였던 공간은 ‘메디테이션 가든’이라 이름붙였다. 낮은 조도를 연출하고 창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도록 긴 의자를 배치했다. 실내로 연결되어 있다. /박성욱작가




-자연을 소재로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건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외부를 무언가로 조성한다는 것에 대해 항상 조심스럽다. 특히나 제주에 내려와서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제주를 다니다 보면 온 데가 자연스러운 경관이기에, 외부경관을 인공적으로 조성한다는 것이 억지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건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 어색하지 않은지 여러 번 생각한다. 아무리 값비싼 나무라도 맞지 않는 곳에 갖다 두면 혼자 튀어 억지스러운 경관이 되고 만다.



테라피스테이라는 컨셉에 맞춰 허브와 티트리를 활용해 조성한 ‘와온’의 정원.


-공간의 특성과 건축물 등에 따라 다양한 조경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정원의 주제를 잡고 구상, 실현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정원을 조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해당 공간에서 어떤 경관을 마주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것이다. 주로 스테이, 카페, 주택 등의 건축물 조경을 작업하는데, 건물 내에서 창을 통해 보는 경관을 어떻게 연출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건물 내부 또한 경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거실에서 보는 경관과 욕실에서 보는 경관 또한 차이가 있다.

건축물의 주요 프로그램 역시 조경 컨셉을 잡을 때 중요한 요소다. 제주 함덕에 위치한 와온스테이는 테라피 스테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에 맞게 외부 조경 또한 휴식과 치유에 초점을 두었다. 허브와 티트리를 중점적으로 사용했다. 정원에 들어섰을 때 허브향이 물씬 풍기면 그런 느낌이 배가될 것 같았다.

제주 선흘에 위치한 선흘아이는 키즈 펜션이다. 그래서 건물 외부에 공유정원을 만들어 넓은 잔디밭을 조성했다. 평소 마음껏 뛰놀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존 귤나무 언덕 일부를 과감하게 철거하고 그곳에 잔디 언덕을 조성했다. 나중에 가보니 상상했던 대로 넓은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눈이 오면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키즈 펜션인 ‘선흘아이’에 조성한 잔디 언덕. 심어져있던 귤나무를 옮기고 언덕 일부를 없애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사진제공=듀송플레이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선흘아이’의 공용 정원 공간.


-살아있는 식물을 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일이다. 비, 바람, 햇빛 등과 어우러져 자라나고 시들고, 생명과의 조화가 중요한 연속성 있는 작업 아닌가.

△끊임없이 공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 모두 조경학과를 졸업했고 ‘듀송플레이스’를 시작하기 전까지 쭉 설계회사에 다녔다. 설계회사에서는 계획설계, 실시설계를 담당하면서 이론적인 기틀을 다졌다. 건축회사의 조경업무도 맡았었는데, 다른 협력업체들과의 진행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 많아 토목, 전기, 설비와의 협력적인 업무도 경험했다. 실질적인 시공업무는 제주에 와서 시작했다. 10년 넘게 설계부문에서 쌓은 경험들이 현장의 돌발변수들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제주에 오니 육지에서 다루어왔던 식생들과 차이점이 많았다. 야자수라든지 남부 수종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과 바람이 많이 불고 염해 피해가 많은 제주만의 특성을 파악하는 건 그간 해온 것과 전혀 다른 일이었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송이슬 소장은 제주에 내려와 엔지니어링회사에서 설계업무를 2년 넘게 담당하며 제주 전역의 식생을 배웠고, 김민호 소장은 3년 동안 시공회사에서 설계, 시공업무를 담당하며 제주의 수목을 공부했다. 식재 후 계절마다 현장을 방문해 수목의 성장과정을 지켜봤다.

듀송플레이스를 열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수종이라든지 새로운 공법 등을 적용하기 위해 농장에 정말 자주 들른다. 생장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고 지켜본 후 현장에서 잘 자랄 수 있고 잘 어우러지는 수종을 선택한다. 작업이 끝나고 난 뒤에도 계절마다 들러 만들어 둔 정원을 살펴본다. 같은 수종이라도 현장마다 자라는 속도라든지 수형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복습 과정이 꼭 필요하더라.

스테이일미터의 억새밭. 건축 과정에서 무거운 중장비가 여러번 다녀간 탓에 땅이 다져저 식재구멍을 일일이 중장비로 다시 파내고 작업했다./사진제공=듀송플레이스


-생각했던 것과 다른 환경 때문에 애를 먹는 일도 많겠다.

△공사를 하기 전 여러 번 현장에 방문해 시간대별로 해가 뜨고 지는 위치라든지, 바람길, 습도, 토질 등을 체크하지만 막상 공사를 시작하게 되면 제주의 지역특성상 땅 아래 암반이 깔려 있다거나 건축 공사 중 생기는 변수로 기존 설계를 변경해야 할 때가 많다.

용수리에 위치한 스테이일미터는 건물 전면을 억새밭으로 만들기로 마음 먹은 곳이었다. 공사 전에 가 본 현장은 억새가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건축공사로 중장비들이 오가며 땅을 다져놓은 탓에 사람 힘으로 땅을 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재 구멍을 하나하나 장비로 파내고 억새밭을 조성했다.

우도에 위치한 스테이소도는 식재할 곳에 암반이 있었다. 그걸 살려야겠다고 생각해 설계를 변경했다. 발견된 암반과 송이석을 대비되게 조성해 경관포인트로 조성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콕 생활이 장기화되면서 자연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자연 속에서 작업하는 듀송플레이스가 동경하는, 꿈의 정원은 어떤 모습인가.

△오름을 올라갈 때, 올레길을 걷다가, 곶자왈 산책길에, 동네 돌담길을 걷다가 마주하는 풍경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 제주스럽다. 이런 다양한 제주의 경관이 적절히 공간에 스며든 정원, 건물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정원. 그래서 사용자들에게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는 공간이 우리가 꿈꾸는 정원이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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