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50) 현대차(005380)그룹 회장 취임 후 첫 연말 인사에서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얼굴을 내세우며 ‘변화’라는 방향 설정을 분명히 했다. 현대차그룹이 15일 발표한 임원 인사는 ‘새로운 리더십, 미래 차 약진, MK(정몽구)→ES(정의선) 시대 전환’이라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수소 연료전지, 로보틱스 등 신사업 분야 임원들 또한 대거 승진했다. 반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시대의 핵심 인사들은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새 리더십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장재훈(56) 현대차 부사장의 사장 선임과 대표이사 내정이다. 장 사장이 현대차그룹 핵심인 현대차의 대표이사 사장에 배치된 것은 ‘정의선 체제’의 출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사라는 분석이다.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장 사장은 정 회장의 변화 의지를 누구보다 잘 읽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사장은 경영지원본부를 맡으면서 정 회장과 임직원 간 타운홀 미팅, 전사적 자율복장제도, 직급 체계 개편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는 ‘군대 문화’에서 ‘선도적인 미래 차 회사’로 성공적으로 변모했다.
장 사장은 국내사업본부장과 제네시스사업본부장을 겸직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내수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점 또한 평가받았다. 기존에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이원희(60) 현대차 사장은 글로벌 사업 최적화, 전동화와 스마트 팩토리 등 밸류체인 혁신 등 지원 업무를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미래’에도 방점을 찍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의 신재원 부사장(UAM사업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UAM 사업 추진에 힘을 실었다. 최근 모빌리티 제조, 모빌리티 서비스와 함께 ‘3대 사업 축’으로 격상된 수소 연료전지 분야를 총괄하는 김세훈 전무(연료전지사업부장)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개발을 담당한 이규오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로봇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현동진 현대차 로보틱스랩 실장도 임원으로 승진하는 등 미래 신사업·신기술·연구개발(R&D) 부문에서 신임 임원 승진자의 약 30%가 나왔다. 여성 임원 다섯 명도 새로 발탁했다.
계열사 사장 인사에서도 이 같은 기조는 잘 나타난다.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012330) 대표이사 사장에 모비스 R&D·전장 담당인 조성환 부사장을 승진 발탁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여수동 현대트랜시스 대표가 모비스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현대트랜시스가 내연기관차 파워트레인 회사라는 점, 미래 자동차에서 점점 전장 부품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조 사장을 낙점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부품 계열사인 현대위아(011210) 사장에는 30년 이상 현대·기아차의 부품 개발을 담당한 정재욱 사장이 내정됐다. 전동화 핵심 부품 등 현대위아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경쟁력 높이기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건설(000720) 사장에는 윤영준 주택사업본부장(부사장)이 승진 발탁됐다.
정 명예회장의 ‘복심’으로 꼽히던 김용환(64) 현대제철 부회장과 정진행(65) 현대건설 부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난 것 또한 명실상부한 ‘정의선 체제’의 출범을 보여준다. 김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 체제에서 그룹의 기획전략 부문을 총괄하는 핵심 참모였다.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취임한 2018년 말 계열사 부회장으로 물러나며 ‘2선 후퇴’한 김 부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그룹을 떠나게 됐다. 정 부회장도 ‘MK(정몽구) 시대’에 현대차 전략담당 사장을 지낸 정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었지만 물러나게 됐다. 윤여철(68) 현대차 노무담당 부회장과 정 회장의 매형인 정태영(60) 현대카드 부회장은 자리를 지켰다. 윤 부회장은 퇴진한 두 부회장과 달리 실무에서 역할을 하며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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