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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서 대출, 쿠팡선 후불결제…'빅테크 신용' 6년새 40배↑

[리빌딩 파이낸스 2021] <1>금융 경계 무너진다





# 일본 도쿄에 사는 마코토(33) 씨는 스스로를 ‘라쿠텐 생태계의 일원’이라고 부른다. 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 이치바’에서 시작한 라쿠텐은 포털·여행·페이·보험·증권·인터넷은행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서비스를 아우르는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이 됐다.

라쿠텐의 이 모든 서비스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는 것은 포인트 시스템이다. 여전히 현금 사용률이 높은 일본에서 마코토 씨는 실제 돈만큼이나 라쿠텐 포인트를 애용한다. 라쿠텐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면 기본 1%, 최대 16%까지 포인트가 쌓이고 라쿠텐 카드·페이를 이용하면 1.5%를 적립할 수 있다. 라쿠텐은행 실적도 추가 포인트가 된다. 이렇게 쌓인 포인트는 라쿠텐 페이로 결제할 때, 라쿠텐에서 여행을 예약할 때, 은행 현금카드를 쓸 때 돈처럼 쓸 수 있다. 라쿠텐 생태계에서의 디지털 발자취가 쌓일수록 돌려받는 금융 혜택이 늘어나는 셈이다.

# 울산에서 작은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 모(34) 씨는 올 8월 네이버의 오픈 쇼핑몰인 스마트스토어에 입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폐업 위기에 처하자 온라인 판로를 넓혀보기 위한 시도였는데, 전국에서 간편 결제로 주문을 받으니 이전보다 매출이 오히려 늘었다. 김 씨는 앞으로 판매 실적을 꾸준히 쌓아 조건이 되면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전용 무담보·무보증 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는 데도 기대를 걸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기술이 발달하면서 가장 변화가 극심한 분야는 뜻밖에도 금융이다. 은행 계좌나 카드 없이 결제하고 전통 금융사가 아닌 곳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이미 일상이다. 불과 4~5년 안에는 AI와 대화로 송금·투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물론 온·오프라인에서 거래를 하는 순간에 딱 맞는 할인 혜택이나 대출 상품을 추천받는 것도 가능해진다.

자체 포인트·고객 데이터 기반으로 네트워크 효과 극대화

알아서 보험 설계부터 결제, AI 통한 송금·투자도 가능

종합지급결제업 도입 땐 ‘금융의 무한팽창’ 가속화할 듯


‘끊김 없는’ 금융 경험의 발전은 전통적인 의미의 금융업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령 냉장해둔 생수병이 줄어들면 냉장고가 알아서 생수를 재주문하고, 웨어러블 기기로 감지한 건강 상태에 맞춰 보험 상품이나 운동 프로그램을 설계 받는 서비스도 나올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결제는 물론 자동으로 이뤄진다. 지금은 은행·카드·보험사의 점포나 애플리케이션을 직접 거쳐야만 할 수 있는 금융이 개인 일상생활의 맥락에 맞춰 자동으로 녹아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 은행으로부터 금융 서비스를 분리하고 ‘보이지 않는 금융’으로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IT 태생의 ‘빅테크’다. 구글·아마존·알리바바·네이버·카카오·그랩 등 강력한 플랫폼과 대규모 자본,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이미 갖춘 이들 빅테크는 금융 서비스까지 진출하며 자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라쿠텐의 사례에서 보듯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한 빅테크의 생태계는 그 자체로 완결적이라는 점에서 영향력도 막대하다.



◇글로벌 빅테크 신용 6년 새 40배로=빅테크의 금융 진출 가속화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지표가 신용 공급 규모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가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빅테크·핀테크의 신용 공급 규모는 지난 2013년 205억 달러에서 지난해 7,95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특히 2018년부터는 핀테크가 공급하는 신용은 오히려 감소한 반면 빅테크 신용거래는 더 빠르게 늘어 전체 규모의 72%(5,720억 달러)를 차지했다.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후불 결제 같은 신용 공급은 소비자의 신용도를 평가하고 부도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통 금융사만 할 수 있는 핵심 기능으로 꼽혔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아마존은 자체 자금으로 입점 판매자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는 ‘아마존 렌딩’에 이어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100만 달러까지 리볼빙 방식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파이낸셜이 최초로 미래에셋캐피탈과 ‘스마트스토어 사업자대출’을 선보였다.

빅테크가 주도하는 디지털 금융 발전 속도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더 빨라지게 됐다. 세계은행·케임브리지대안금융센터가 올 3~8월 전 세계 114개 금융 당국 및 중앙은행 담당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결제·송금은 이전보다 60% 더 증가했다. 디지털뱅킹(22%), 저축·예금(19%), 인슈어테크(13%)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금융 서비스일수록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IT·유통 빅테크가 뒤흔드는 한국 금융=우리나라는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르다. 우리나라는 현금 사용률이 전 세계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낮고 경제활동인구의 은행 이용률은 91%를 넘는다. 그만큼 금융거래의 대부분이 디지털화돼 있고 디지털 금융에 대한 소비자 친밀도도 높다. 마이데이터 제도화, 마이페이먼트·종합지급결제업 도입 등 디지털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규제 환경 개편도 적극적이다. 이에 따라 지급 결제, 대출, 자산 관리 등 전방위로 금융사와 비금융사의 경계도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종합지급결제업이 도입되면 은행이 아니어도 계좌 발급까지 할 수 있게 돼 은행을 아예 거치지 않는 금융 행위가 더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제 시장은 이미 격전지다.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 같은 IT 빅테크는 물론 쿠팡·신세계·롯데 등 ‘유통 공룡’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유통업체가 직접 제공하는 결제 서비스는 소비자 입장에서 이동을 최소화하고 개인화된 혜택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이 뚜렷하다. 더욱이 앞으로는 간편 결제도 후불 결제가 가능해져 신용카드 기능 일부까지 탑재할 수 있게 됐다. 쿠팡은 이미 지난 9월 직매입 상품에 한해 후불로 결제할 수 있는 ‘나중 결제’를 한시적으로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

신우석 베인앤컴퍼니 금융총괄 파트너는 “빅테크가 탁월한 고객 경험을 앞세워 금융에 진출하면서 전통 금융기관이 아니어도 고도화된 금융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며 “고객을 만나고 서비스를 소개하고 제공하는 모든 여정에서 고객 경험을 얼마나 혁신할 수 있는지가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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