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드라마 속 원조 재벌 2세는 누가 뭐래도 1994년 MBC ‘사랑의 그대 품 안에’의 차인표다. 검은 가죽 재킷에 오토바이를 타고, 색소폰을 부르며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백화점 사장님’ 차인표는 당시 전국의 숱한 여심을 흔들었다. 차인표 열풍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고, 최고 시청률은 45.1%에 달했다.
그렇게 차인표는 스물일곱 살에 데뷔작으로 ‘벼락스타’가 됐다. 그의 말대로 “일생의 한 번 오기 힘든 행운”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도 나이가 들었다. 올해 벌써 쉰다섯이지만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 ‘바른 생활 연예인’ 이미지가 강하다. 차인표는 “행운을 누린 대가가 컸다”며 “드라마 이미지가 계속 내 삶을 구속했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참기 힘들 정도로 간절했을 때 제안받은 작품이 지난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코미디 영화 ‘차인표’였다. 그런데 주어진 배역이 차인표다. 그것도 웃기면서 애잔한 차인표를 연기하라니, 도대체 뭔가 싶었다. 감독이 자신의 ‘안티’가 아닌지 의심도 했다.
고민을 거듭한 그는 재작년에 출연을 결정했다. 그는 “인생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뛰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감사했던 행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 영화를 만났다”고 전했다.
출연 결정을 했음에도 촬영에 들어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부담은 영화 제목이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 이름 석 자가 뭐라고, 이게 부담을 가질 일인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됐다”는 그는 “질문을 계속 하다 보니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차인표는 이번 영화에서 파격 변신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그는 “젊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아무리 바쁘고 유명해도 연극 무대로 가라, 재충전하고 오라’ 등의 조언을 해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며 “더 열심히 잘하고 싶고,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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