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의혹 사건을 풀어줄 결정적 증거인 블랙박스 영상을 담당 수사관이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것을 경찰이 인정하면서 ‘봐주기 수사’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경찰은 해당 경찰관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지만 “블랙박스 영상이 없었고 사건을 제대로 처리했다”고 해명하던 경찰의 신뢰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사건을 재수사 중인 검찰은 당시 담당 수사관을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서울경찰청은 24일 “서울 서초경찰서 담당 수사관 A경사가 지난해 11월 11일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는 보도 내용이 일부 사실로 확인돼 이날자로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수사본부장(현재 직무대리) 지시에 따라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을 단장으로 모두 13명으로 구성된 청문·수사 합동 ‘진상조사단’을 편성해 조사에 착수했다”며 “조사 결과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 수사하겠다”고 했다.
택시 기사 B씨는 전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블랙박스 복원업체에서) 휴대전화로 찍은 블랙박스 영상을 경찰에게 보여줬지만 그가 ‘영상을 못 본 것으로 하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30초 분량의 영상에는 이 차관이 택시기사 B씨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을 통해 의혹이 제기되자 담당 경찰관은 서울경찰청측이 사실관계를 묻자 “영상을 확인한 건 맞다”고 진술했다.
이 차관은 지난해 11월 6일 서울 서초구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운 택시기사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 동안 경찰은 폭행사건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지 못한데다 택시기사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종결 했다는 입장이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가 “규정이나 지침을 고려할 때 내사 종결에 잘못된 부분은 없다고 판단한다”고 까지 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이 블랙박스 영상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바로 다음날인 지난해 11월 12일 내사종결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봐주기 수사 의혹이 또 다시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택시기사의 휴대전화에서 이 차관의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가 경찰에게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져 검찰은 이 부분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경찰의 자체 진상조사와 상관없이 조만간 A경사를 불러 해당 영상의 존재 사실을 상부에 보고했는지, 내사 종결 과정에 이 차관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만약 검찰 수사에서 이 차관이 운행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나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단순폭행으로 보고 내사 종결한 경찰을 향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1차 수사권 종결 확보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경찰에 대한 불신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이 차관 변호인은 입장문을 내고 “택시기사의 진술을 두고 진위공방을 벌이는 것은 공직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다만 블랙박스 영상은 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어떤 경위에서건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한동훈 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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