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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만 5조 내는데 "더 내라"..."은행 고통분담 어디까지" 개탄

[머나먼 금융 독립 <상> 관치·정치에 숨막히는 금융권]

고질적 관치에 정치권까지 가세

이익공유제·상환유예 연장 압박

'배당 자제' 당국 요구와 엇박자도

자율경영 보장 없이 경쟁력 퇴보

금융지주 주가 10년째 지지부진





# 국내 주요 시중은행에 입행한 지 12년이 된 차장급 직원 김 모 씨는 최근 주가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입행 후 10여 년간 월급의 15% 내외를 본인의 은행이 속한 금융지주 주식으로 받았는데, 수익률이 -30%에 달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코스피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고 우량주는 그동안 몇 배 이상 올랐는데 금융주는 되레 떨어졌다”며 “주변에 주식해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뿐인데 금융주는 장기 투자를 할수록 수익률은 더 떨어지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고질적인 관치 금융에 최근에는 포퓰리즘식 정치 금융까지 가세하면서 국내 금융이 피멍 들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주가가 단적인 예다. KB금융의 주가는 10년 전 주당 5만 7,000원 선에서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4만 5,000원 내외에서 거래 중이다. 신한지주 역시 10년 전 5만 3,000원대에서 거래됐지만 최근 주가는 3만 3,000원대에 머물고 있고, 하나금융은 4만 5,000원대에서 현재 3만 6,000원대에 멈춰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지주 주가가 10여년 째 지지부진한 것은 금융권 스스로 현실에 안주했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관치 금융이 자리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25일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우리 금융사들이 얼마든지 혁신을 하고 해외에 나가 잘 하는 분야를 찾을 능력이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법·제도로 손발을 다 묶어 놓고 주요 금융기관장에 관료를 앉히는 관치 금융이 심화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꼬집었다.

◇이익 내면 법인세 체계에 따라 세금 많이 내는데… “또 내라”=최근에는 정치권이 표심을 노려 ‘만만한’ 금융권을 쥐고 흔드는 ‘정치 금융’까지 가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익공유제가 대표적이다. 여당은 ‘상생협력기금’ 또는 ‘사회연대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의 법 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기업이 기금에 돈을 내면 출연금의 일정 수준만큼 법인세에서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은 현행 법인세 체계를 무시하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면 법인세 체계에 따라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데 이를 뛰어넘어 추가로 이익을 공유하자는 ‘강요’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9년 5대 금융지주의 법인세 비용을 보면 신한금융이 1조 2,691억 원, KB금융은 1조 2,208억원 , 하나금융 9,825억 원, 우리금융 6,855억 원, 농협금융 7,490억 원 등으로 총 규모가 5조원에 육박(4조 9,069억 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지주가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고 하지만 점포 축소 등 비용을 줄인 ‘불황형 흑자’ 성격이 있고 소상공인 등의 원리금 상환 유예에 따른 대손충당금을 적게 잡은 탓도 있다”며 “만약 올해 대출 부실이 커져 대손충당금을 뛰어넘는 손실이 발생하면 그때가서 정치권이 보전해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계자도 “예컨대 금융사가 어떤 대학교를 지원한다고 하면 이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구체적으로 특정되기 때문에 배임에 휘말리지 않지만, 이익공유제는 불특정 다수와 이익을 공유하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로 인한 수익도 불투명해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與 “원리금 상환 유예, 연말까지 연장 기대”=전 금융사가 자영업자·중소기업이 신청하면 원리금 상환을 유예해줘야 하는 정책도 표심을 의식한 대표적인 ‘정치 금융’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4월 시작돼 9월 말 일몰에서 한 차례 연장됐으며 다시 올해 3월 말 종료에서 연장될 예정이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아예 연말까지 기한이 연장되기를 기대한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은 많은 대출자들이 스스로 이자를 갚고 있어 이자 유예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점을 정책 연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면 정책의 출구 전략을 시행해도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럼에도 이를 연장하겠다는 것은 결국 선거를 의식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만약 연말까지 연장된다면 대선 국면인데, 또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는 금융사들이 원리금 상환 유예 정책으로 이자를 받고 있지 않아도 장부상에는 정상적으로 납입받고 있다고 기재해 자산 건전성 지표의 왜곡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국 “배당 자제”vs 정치 “이익 공유” 엇박자도=당국과 정치권의 요구가 많다보니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며 금융사가 흡수해야 할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배당을 자제하고 곳간을 채워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정치권에서는 금융사가 코로나19에도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으니 곳간을 풀어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당국은 ‘빚투’를 막기 위해 신용대출 속도 조절을 요구해 금융사는 금리를 올려 대응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대출금리가 너무 높다며 낮추라고 압박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은행들이 주인이 없다보니 정부가 계속해서 개입을 해왔고 최근에는 정치권까지 합세하고 있다”며 “자율 경영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금융 산업의 미래도 어두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상봉 교수도 “정치권이 금융 산업의 발전을 바라보기보다는 내수 산업으로만 보는 현 상황에서는 우리 금융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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