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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발의·심사 되풀이…의원입법도 '영향평가' 도입해야

['퍼주기 입법' 폭주 제동장치가 없다]

■포퓰리즘 늪에 빠진 국회

선심성·규제 물량공세 땐

발의 법안 질적 하락 이어

편가르기 등 갈등 부를수도

'법안 평가' 입법권 침해보다

'지원제도'로 인식 전환을

국회 전경/연합뉴스




국회의 ‘묻지 마’식 법안 발의에 따른 과잉 입법이 사회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선심성 법안과 규제 법안이 혜택과 규제를 받는 국민 간 ‘편 가르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의원입법의 사전·사후영향평가가 없어 의원 자신이 발의한 법안이 선심성인지 규제 법안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라 ‘일하는 국회’의 질적 전환을 위해 입법영향평가 도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공동 발의조차 인식 못 한 채 표결=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공동 발의 의원 가운데 해당 법에 반대나 기권 표결을 한 의원은 총 19명에 달했다. 이들은 법안 발의자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정작 본회의 표결에서는 찬성 투표를 하지 않았다.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법안 공동 발의자인 것을 착각한 경우도 상당했다.

규제 법안도 마찬가지로 법안 자체에 영향평가가 없다 보니 발의자인 의원이 규제 입법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쏟아내는 선심성 포퓰리즘 법안도 급증 추세다. 입법 비수기인 1월 656건이 의원 발의됐다. 이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직전 1월 입법안인 524건을 가볍게 넘겼을 뿐 아니라 최근 10년간 1월 한 달 동안 법안 발의 평균(247건)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특히 656건의 법안 가운데 감염병 예방 관련 법률만 20건, 재난 관련 의료비 지원과 안전 관리 5건, 소상공인지원법률 8건 등 이른바 ‘퍼주기 법안’으로 분류되는 법안이 속출했다. 해당 기간 세금 감면의 특례법은 44건에 달했다.



◇법안 질적 향상 유도 시스템 개선=결국 과잉 입법에 매몰된 국회의 발의 행태를 질적 향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해 국회사무처가 정책 연구 용역으로 추진한 ‘국회 의원입법 동향 및 의원입법의 질적 향상 방안 연구’ 내용을 보면 입법영향평가를 위해 법안 발의 전 파급 효과와 재원 조달 등을 파악하기 위한 지원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법안 발의 때부터 기존 제도와의 차이, 대상 범위 등 제도 변화의 과정과 결과를 모두 평가하기 위해 입법 지원 기관의 인력과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입법 환경 개선을 위해 입법 영향의 분석 시행을 권고하고 있다. OECD 규제개혁보고서에는 모든 규제 절차는 입법 방식과 상관없이 동일한 수준의 엄격함을 유지하도록 입법 과정의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입법은 엄격한 평가를 거치고 있지만 의원입법은 영향평가가 부족해 의원입법에도 입법영향평가 시행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상공회의소도 국회에 입법영향평가 제도화를 요청했다. 입법영향평가 도입에 따라 국회의 심사 부담을 줄이면서 ‘황당 법안’ 발의를 억제할 뿐 아니라 법안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대한상의의 주장이다.

◇정부 발의보다 허들 낮은 의원 발의=OECD까지 나서서 한국 의회 입법 개선을 주문한 것은 정부 제출 법안에 비해 의원 발의 과정이 지나치게 간소한 까닭도 있다. 정부 입법은 현재 사전영향평가를 받지만 의원입법은 사전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 입법은 부패영향평가, 관계 기관 협의, 당정 협의,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심의 등의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반면 의원입법안은 의원 10인 이상의 동의와 비용추계서 첨부 요건만 충족하면 발의가 가능하다. 하룻밤 사이에 법안을 만들어 보좌관이 다음날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10명의 의원 서명을 받아내면 법안 실적이 1건 기록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차이가 내실 있는 의원 발의 자체를 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입법영향평가 ‘입법권 침해’ 인식부터 전환돼야=결국 국회의 입법 물량 공세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로 입법영향평가 도입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영국·프랑스 등 다수의 국가들은 2000년대부터 영향평가를 도입해 법안을 발의하기 전 법률 제·개정의 잠재적 영향을 미리 분석하고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사전·사후 분석 결과를 법률안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입법영향평가 제도 자체도 평가 시기에 따라 세분화돼 있다. 독일은 사전입법평가·병행입법평가·사후입법평가 등 3단계로, 스위스 등은 사전·사후 평가 2단계로 나눠 실시한다. 프랑스도 2008년 개정 헌법을 통해 입법영향평가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일본 역시 의원입법영향평가가 없지만 일본은 정부 입법이 의원입법에 비해 3배가량 많은 데다 의원입법조차 각 정부 부처와 공동으로 원안을 작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의회정치가 발달한 국가 중에는 한국이 유일하게 입법영향평가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지낸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제도 도입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실제 이를 추동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입법권을 침해한다기보다 입법영향평가가 입법의 지원 역할을 한다는 인식 전환이 우선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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