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주에서 배터리주로 탈바꿈 중인 SK이노베이션(096770)이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다. 지난해 실적 부진에 개의치 않고 최근 한 달간 주가가 60%나 뛰었다. 배터리 사업의 잠재력을 인정하는 데 전문가의 공감대가 모이지만 매출액의 65%를 차지하는 정유 시황 회복이 더디고 막대한 투자 비용을 고려하면 주가가 단기 고점에 이르렀다는 정반대 견해도 나온다.
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은 전 거래일보다 12.86% 급등한 31만 6,000원을 기록했다. 새해 첫 거래를 19만 원에서 시작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한 달 66.32% 급등하면서 앞자리 숫자를 두 번이나 바꾸었다. 현대차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의 3차 물량 수주 기대와 배터리 경쟁사 대비 저평가됐다는 점이 투자자의 눈에 띄면서 뒤늦게 상승 발동이 걸렸다.
최근 주가가 급하게 오른 것은 맞지만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달 30일 대신증권이 SK이노베이션의 목표 주가를 기존 24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67%나 상향했고 이베스트투자증권(33만→37만 7,000원), 삼성증권(32만→36만 원), 신영증권(33만→35만 원) 등도 크게 올렸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을 공개했지만 배터리 부문의 연간 매출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고 배터리 공장의 공격적인 증설을 예고한 것이 전문가의 투심을 자극했다. 그밖에 소재 사업 자회사인 SK IET가 올해 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주가 전망이 밝은 이유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E-GMP 수주 기대와 (LG와의 소송에서 기인한) 불확실성 해소 기대를 반영해 (기업 가치 산정에 적용되는) 할인율을 축소해 목표 주가를 올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성장 기대감은 이미 충분히 반영돼 추격 매수를 자제할 때라는 ‘소수 의견’도 있다. 지난달 25일 DB금융투자는 SK이노베이션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고 목표가를 올리기는 했지만 시세보다 낮은 25만 원을 제시했다. 하나금융투자도 ‘중립’ 의견을 내걸면서 28만 원이 적절한 주가라고 평가했다.
보수적 접근을 요하는 것은 본업인 정유 부문의 회복세가 더딘 가운데 배터리 사업의 청사진을 실현하기까지 연간 4조 원의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 등 재무 불확실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원자재가 랠리를 펼치고 있지만 올해 원유 수요는 지난 2019년 수준을 되찾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석유 수요를 2019년 대비 300만b/d 낮은 9,710만b/d로 전망했다. 오는 10일 LG에너지솔루션과의 영업 기밀 침해 사건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예비 결정 당시의 패소 판결이 그대로 인용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수입이 전면 금지될 수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배터리의 고성장은 긍정적이지만 정유 업황의 회복이 더뎌 지속적인 자산 매각이 이뤄질 수 있다”며 “현시점에서 소송 여파도 예단이 어려워 결과 확인 후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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