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라비 이집트 수에즈운하관리청(SCA) 청장은 27일(현지 시간) “좌초한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에서 평형수 9,000톤을 빼냈고 운하 제방에서 2만㎥가량의 흙을 퍼냈다”며 “곧 다시 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정상화 시점을 제시하지 못했다. 수주는 아니어도 최소 며칠은 수에즈운하 정상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텍사스주의 이상 한파 등에 따라 반도체를 비롯해 석유화학, 전자 부품 생산 차질로 휘청거렸던 글로벌 공급망은 수에즈운하 셧다운(폐쇄)이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해상 운임과 유가가 치솟고 각종 제품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거대 컨테이너의 좌초로 물길이 막힌 수에즈운하는 전 세계 해상 물류의 12%를 차지한다. 스웨덴 가구 업체 이케아는 이번 사태로 컨테이너 100여 개가 발이 묶였다. 건설 장비 업체 캐터필러는 항공 편으로 제품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산품 외에 커피와 휴지·의류·해산물 등 전 분야에 걸친 공급 우려가 제기된다.
현재 수에즈운하에는 320여 척의 배들이 대기하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싱가포르까지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면 왕복 34일이 걸리지만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면 43일이 소요된다. 운임도 수십만 달러가 추가된다. 해운 정보 업체 로이드 리스트는 수에즈운하가 막히면서 시간당 4억 달러(약 4,52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문제는 이미 공급망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실제 자동차·스마트폰·가전 제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칩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구식인 8인치 팹에서 만드는 자동차용 칩에서 시작됐던 칩 부족은 이제 한정된 생산 라인 확보 경쟁으로 이어지면서 가전 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부족으로 전방위 확산되고 있다. 갑갑한 것은 일본 자동차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의 화재,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TSMC가 있는 대만에서 56년 만의 가뭄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점이다.
지난 2월 불어닥친 텍사스 강추위에 따른 공급망 붕괴도 복구까지 최소 2~3달은 더 걸려야 한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의 가동 중단에 이어 석유화학 제품 생산도 줄면서 스마트폰과 의료 보호 장비 등에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주요 공장이 줄줄이 멈추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도요타·혼다 등에 이어 지프와 닷지 등을 생산하는 업체 스텔란티스와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가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완성차 업체의 매출 손실이 100만 대 이상, 금액으로는 61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만의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공급 대란에 2분기 5세대(G) 이동통신 스마트폰의 생산량이 예상 대비 30% 줄어들 수 있다고 점쳤다. 알리안츠는 “1월부터 공급망 교란으로 세계 무역 손실이 2,000억 달러 이상 발생했다”며 “수에즈운하 중단으로 매주 60억~100억 달러가 추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전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높다. 특히 코로나19 봉쇄 연장으로 타격을 입은 유럽 경제에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에즈운하 사고는 가뜩이나 고전하던 글로벌 공급망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며 “유럽이 수에즈운하 의존도가 높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미국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급 우려와 경기회복 기대가 겹치면서 원자재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연초 대비 25.66% 오른 것을 비롯해 구리(15.40%), 미국 옥수수(14.15%) 등이 크게 상승했다. 원자재를 대거 수입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공급과 물류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만 해도 생산 공정의 특성상 단기간 내 확대가 불가능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항과 롱비치항의 경우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물동량을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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