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017670)이 2조 6,000억 원(지난 3일 종가 기준) 규모의 자사주 869만 주를 소각한다. 전체 발행 주식의 10.8%로 그동안 국내 4대 그룹 자사주 소각 사례 중 발행 주식 총수 대비 물량으로는 최대다. 금액으로는 삼성전자(005930) 자사주 소각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SK(034730)텔레콤은 4일 “발행 주식 총수의 10.8% 규모인 자사주를 소각함에 따라 발행 주식 총수는 기존 8,075만 주에서 7,206만 주로 감소한다”고 밝혔다. 소각 예정일은 6일이다.
4월 인적 분할 추진 발표에 이어 이번 대규모 자사주 소각으로 SK텔레콤이 기업 가치 및 주주 가치 제고 의지를 확고히 표명한 것이다. 아울러 인적 분할 이후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됐던 SK와 SK텔레콤 신설회사 합병 가능성도 원천 차단해 지배 구조에 대한 불확실성도 없앤 것으로 분석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선진화된 주주 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SK그룹이 강조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맥을 같이한다”며 “글로벌 자본시장의 모범 사례로 한국 기업에 대한 시각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대규모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와 기업의 가치를 동시에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날 자사주 소각 방침 발표에 SK텔레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장 중 32만 2,0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지난달 14일 인적 분할 연내 추진 방침 발표 이후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기대감에 SK텔레콤 주가가 상승세를 꾸준히 이어온 가운데 이날 발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에 신설 투자 전문 회사와 SK의 합병 가능성도 잠재워 기업 가치에도 긍정적 영향이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SK텔레콤이 인적 분할 방침을 발표하면서 박정호 사장 등이 “합병 계획이 없다”고 명시했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합병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자사주 소각으로 이 같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시장에서는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를 SK가 아닌 중간지주사 아래에 두는 것이 경영적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 보고 SK가 결국 장기적으로 합병의 길을 택할 것으로 봤다. 회사 입장에서도 자사주를 남겨 둔 상태에서 인적 분할 후 존속회사와 신설회사 간 자사주를 활용해 현물 출자 및 유상증자 과정을 거치게 되면 SK는 SK텔레콤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현재(26.8%)보다 약 두 배 가까이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향후 SK와 신설회사 합병 시 대주주의 지분 희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자사주를 소각함으로써 이른바 ‘자사주 마법’ 등 자사주를 활용해 대주주가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사라졌다. 특히 당초 예상보다 빨리 이사회를 열어 자사주 소각 결정을 내린 것은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겠다는 SK텔레콤이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라는 분석이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합병 불확실성으로 인해 중간지주사의 과도한 저평가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우량 자회사 기업공개(IPO) 등이 예정된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합병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중간지주사 시가총액 증대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노현섭 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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