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과 낸드플래시 양 날개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비상합시다.”
SK하이닉스가 인텔과 낸드 사업 인수 계약을 맺은 지난해 10월 이석희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 사장의 발언에는 인텔 낸드 사업 인수 이전에는 사실상 D램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날개로만 사업을 이끌어왔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중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점유율 2위에 오른 강자다. 반면 낸드 시장에서는 점유율 11%로 4위를 차지하며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실적에서도 낸드 부문은 만년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수요가 폭발하면서 지난달 낸드 가격이 1년 만에 8% 넘게 반등하는 등 시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12월 업계 최고층인 176단 4D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하며 뒤늦은 시장 진입으로 안착이 어려웠던 낸드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는 3분기 SK하이닉스 낸드 사업은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며 인텔과의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2위로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적자에 시달리며 기업 내 ‘미운 오리’ 신세를 면치 못했던 사업들이 성장 주축이 돼 ‘백조’로 거듭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송수영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특정 사업의 위상 변화는 시황에 따라 단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라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설비·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해 생산 능력을 갖춰놓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요인으로 인해 수요가 단기적으로 급증했다 하더라도 그만큼 오랫동안 사업 기반을 닦아왔기 때문에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반도체 업체 DB하이텍이 주력으로 생산하던 8인치 웨이퍼는 한때 생산성 높은 12인치에 밀려 설 곳을 잃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며 TV·스마트폰 등의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여기에 이미지센서(CIS)·파워소자(PMIC) 등 8인치 웨이퍼가 필요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성장하면서 DB하이텍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넘게 증가하는 등 DB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게 됐다.
LG전자는 장기간 적자를 이어온 전장(VS) 사업에서 하반기 흑자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세계 3위 부품 업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세운 합작 법인에서 ‘연평균 매출 50% 이상 성장’을 자신할 만큼 내부의 기대감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LG전자가 VS 사업에 집중한 것은 중장기적으로 대비를 잘해온 대표적 사례”라며 “전기차의 성장 등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양산업으로 간주됐던 액정표시장치(LCD)의 가격 상승은 LG디스플레이에 호재로 작용했다. LCD 업황은 중국에서 시작된 공급 과잉으로 지난 2018년부터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미중 무역 분쟁으로 정보기술(IT) 관련 수요가 급감하는 사태까지 겹쳤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여파로 TV 등 가전 수요가 늘자 LCD 패널 가격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65인치 LCD TV 패널 가격은 지난해 4월 167달러에서 올 3월 231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에 지난해 ‘7분기 연속 적자’를 끝내고 흑자 전환에 성공한 LG디스플레이는 LCD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분야를 중심으로 구조 혁신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HMM은 2011년부터 2019년까지 9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주력인 컨테이너 업황 부진이 2010년대 내내 계속되며 끝없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고 글로벌 경제성장 대비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 탄력도가 둔화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컨테이너 업황이 개선되며 HMM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9,808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운 운임은 단기 급등으로 당분간 등락은 있겠지만 주요국을 중심으로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며 물동량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를 주목해야 한다”고 전했다.
OCI는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폴리실리콘 가격이 뛰며 실적 개선에 청신호가 켜졌다. 한때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에 추락을 거듭하던 폴리실리콘값은 올해 미국·중국·유럽 등 세계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움직임에 힘입어 반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 설치량이 늘며 폴리실리콘 가격 상승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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