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사회, 기업의 지배구조를 고려하는 ESG 투자 열풍이 국내외에 거세다. 필요성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뚜렷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직접 원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되겠다’고 나섰다.
김용진 국민연금 공단 이사장은 19일 ‘국민연금이 함께하는 ESG의 새로운 길' 발간을 맞아 서울경제신문과 전화 통화에서 “ESG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필수이며 국민연금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어 “책에도 나와 있지만 도이체방크나 옥스퍼드 대학 등의 연구 결과에서도 ESG를 도입한 기업은 자본조달 기업과 리스크를 낮추고 재무 성과는 물론 주가에도 긍정적이었다"면서 “도입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이사장에 취임한 후 내내 ESG 투자에 대해 고민해왔다. 국민연금은 이미 2019년 말 ESG 원칙을 담은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확정했다. 다만 이 방안을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ESG 투자 과정의 문제를 개선하는 중심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업과 투자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국민연금 ESG위원회(이니셔티브·주도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21일 ESG 책 발간을 기념해 포럼을 열고 국민연금 ESG 위원회 출범을 알린다. 포럼에는 ESG 경영에 밝은 SK그룹에서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사회적 가치) 위원장과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이 참석하고, 한화생명·풀무원·에스오일·삼천리에서 주요 임원이 참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NH아문디 등 국민연금의 책임투자펀드를 위탁받은 운용사와 신한·우리·하나은행 부행장도 머리를 맞댄다. 이날 참석자 대부분은 앞으로 ESG 위원회에서 역할을 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이 실질적인 ESG 투자를 위해 꼽는 첫번째 해법은 일관된 평가 기준이다.
그는 “전세계 ESG를 평가하는 기관이 600개가 넘고 같은 기업도 기관에 따라 최대 5단계까지 차이가 난다”면서 “국민연금을 필두로 기관투자자들이 ESG 보고서의 항목과 작성 기준을 통일하고 산업이나 지역, 기업별 여건이나 정책 환경을 수용하는 한국형 ESG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이사장은 석탄 화력을 활용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투자를 배제하는 이른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에 의문을 표했다. 그는 “투자자들의 철학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한 투자 배제 원칙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ESG 투자에 선도적인 네덜란드연기금이나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탄소 발생을 줄이는 대안이 있다면 석탄화력을 사용하는 기업에 투자하도록 융통성을 준다.
그는 기업을 향해 ESG 경영의 절박함을 역설했다. 김 이사장은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조차 기업 경영의 우선순위가 주주가치에서 소비자·종업원·협력업체·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달라지고 있다”면서 “기업이 소나기 피하기 식으로 대응한다면 중장기적인 생존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국민연금의 투자 철학과 방향, 개념, 목적, 적용대상과 범위를 공개해 기업이 사업 계획에 반영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관료 출신인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구체적인 ESG 실행 방안에 관해 묻자 막힘없이 답했다. 그는 “올해부터 국민연금의 뉴욕·런던·싱가포르에 위치한 해외 사무소에 각 1명씩 책임투자 담당자를 파견할 것”이라면서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주식과 채권 에도 책임투자를 모니터링하고 기업과 대화를 강화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책을 보면 국민연금은 국내채권에 대해 이 달부터, 해외주식과 채권은 12월부터 ESG통합전략을 적용한다. 국내주식에 대해서는 6월까지 환경과 사회 관련 중점 관리사안을 마련하고 9월까지 관련 지침을 개정한다. 내년 1분기부터는 국내외 주식·채권 위탁 운용사 선정시 ESG 가점을 반영한다.
주식과 채권과 달리 사모투자나 부동산, 인프라에는 ESG 적용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김 이사장은 “사모펀드는 독립적으로 운용되고 국민연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내외 기관투자자가 출자하고 있어서 국민연금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면서 “중장기적으로 반영 방안을 고민할 문제”라고 토로했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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