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평가분류원 직원들이 세종시 이전 대상이 아니면서도 세종시 아파트를 특별공급 받은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이 제도를 악용한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관평원이 세종시에 171억 원의 혈세를 들여 ‘유령 청사’를 세운 데 이어 민관을 가리지 않고 각종 기관들이 세종시 내 사옥 이전, 조직 분리 등을 동원해 특공 자격을 받았다. 제도 악용 사례가 속출하며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는 등 취지에 맞게 특공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세종시 공직자 아파트에 대한 전면 전수조사를 요구하며 시세 차익과 취득세 감면액 환수를 주장했다.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도 “수사 의뢰가 들어오면 수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21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세종시에서 공급된 아파트 11만 780가구 중 2만 6,163가구가 이전기관 특공 물량으로 분양됐다. 통상 특공은 다자녀 가구나 신혼부부 등 주거 배려가 필요한 대상자에게 주택의 일정 비율을 우선 분양하는 제도다. 지난 2010년부터 세종시로 근무처를 옮기는 공무원과 공공 기관 직원들의 조기 정착을 유도하기 위해 이들도 특공 대상에 포함하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 잠겨 있던 특공 악용 사례는 세종시 집값이 급등하며 속속 드러났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2013년 1억 8,707만 원에서 지난달 5억 6,872만 원으로 약 세 배가 됐다. 특공 악용은 장관부터 공기업과 민간기업 사원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3년 세종시 아파트를 특공 분양 받았지만 단 하루도 실거주하지 않고 2017년에 팔아 1억 6,000만여 원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새만금개발청 직원 46명과 해양경찰청 직원 165명은 청사가 군산과 인천으로 각각 이전했는데도 특공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시세 차익을 누리고 있다.
관평원 사태는 정부의 특공 관리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2005년 행정안전부가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 계획 고시’에서 이전 제외 기관으로 못박았지만 관평원 측은 “당시에는 몰랐다”는 입장이다. 관세청은 2016년 행복청,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과의 사전 협의를 바탕으로 기획재정부에 세종청사 신축 예산 심의를 요청했고 기재부는 171억 원의 예산을 승인했다. 관련 예산이 담긴 2017년도 예산안은 국정농단 사태로 어수선하던 2016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관세청은 기재부가 예산을 지급하자 2017년 2월 22일 LH와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해 이를 근거로 같은 해 3월 7일 행복청에 아파트 특공 대상 기관 지정을 요청했다. 행복청은 같은 당 22일 추가 지정됐음을 통보했다. 청사 건립이 실제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토지 계약만으로도 특공을 가능하게 한 허술한 관련 조항이 낳은 결과다. 일각에서는 관세청이 행안부가 하지도 않은 해석을 넣어 행복청을 속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공 제도로 인한 세종시 ‘로또 아파트’ 당첨은 중앙부처 직원만이 아니다. 특히 세종시교육청은 시설사업소를 독립시키며 2019년 12월 31일 상실하는 특공 자격을 오는 2024년 1월까지 연장시켰다. 세종시청·세종시교육청에서도 지난 5년간 약 2,000명의 직원들이 특공 분양을 받았다. 이춘희 세종시장도 분양 자격 제한 6개월 전인 2019년 6월 시장 재임 중 특공 분양을 신청해 124㎡ 아파트에 당첨됐다.
세종시에서 세종시로 이전하며 특공 분양을 받기도 했다.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한국전력공사 세종지사(21명), 대전에 있는 세종전력지사(20명)와 중부건설본부(151명) 직원 총 192명은 세종시 통합 사옥 이전 대상으로 특공 혜택을 받았다. 세종시 소담동에 있는 통합 사옥 예정지는 세종지사와 직선거리로 불과 13㎞, 세종전력지사와 중부건설본부와 약 20㎞ 떨어져 있다. 특공을 받은 직원 2명은 이미 퇴직한 상태다.
세종에 입주한 대학병원·학교·민간기업 등도 특공 대상이 된다. 보람고등학교 등 교육기관 42곳, 충남대병원 등 의료기관 10곳, 한화에너지 등 민간기업 7곳이 이에 해당한다. 대전 소재 벤처기업 A사는 세종시 산업단지에 입주하는 조건으로 직원 5명이 특공을 신청해 1명이 당첨됐지만 실제로는 세종시 이전을 하지 않은 채 제도를 악용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특공의 취지에 맞게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특공을 통해 분양 받은 아파트를 환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환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실제 입주를 하지 않으면 다시 환매하고 공공기관에 되파는 조건으로 특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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