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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할 일과 그만둬야 할 일 구분 못해…변화 불능 국가로 치달아” [청론직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큰 정부’이자 ‘편향 정부’…공공재개발은 일감몰아주기

연금·노동 개혁 등 힘든 과제 외면하고 ‘돈 풀기’만 좇아

이대로 가면 저성장 ·사회 분열 이탈리아 길 밟을 수도

탈원전, 5년 단임 정부 결정 사안 못 돼…지속성 의문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로 삼은 공공성 강화는 대부분 재정을 동원하면 이룰 수 있다”면서 “하지만 고통스럽고 어려운 구조 개혁 과제는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오승현 기자




정부개혁론자인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론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완벽한 ‘큰 정부’로 규정했다. 재정 투입 규모와 시장 개입 강도, 공무원 증원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큰 정부의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 정부를 한쪽만 보는 ‘편향 정부’라고 꼬집었다. 예컨대 복지·소방 등 분야의 공무원 증원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시장 개입과 직결되는 경제 분야 공무원과 부처의 기능을 줄이는 노력을 병행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현 정부의 이런 편향성은 정책 측면에서도 나타나 인기를 좇아 재정 동원을 일삼은 반면 불편하고 어려운 개혁 과제는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해 정책 실패를 자초했다”며 “그게 최대의 패착”이라고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개혁안은 당초 해체 수준까지 거론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근본적인 기능 재편이 요구된다. 주택 분양 사업은 완전히 접어야 한다. 민간의 수익을 공공 부문이 빼앗아가는 것이다. 민간 건설사의 수익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 공기업을 통한 주택 공급보다 국가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높다. 공사는 분양 사업의 이익금으로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공기업이 임대주택 공급을 전담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선진국처럼 주거 바우처(임대료 지원)를 활용하는 대안도 있다.

-정부는 공공 재개발 방안까지 꺼내 들었는데.

△공기업 일감 몰아주기다. 대기업은 일감을 몰아주면 사회적 비판과 처벌까지 받는다. 공공 부문 비대화는 주무 부처와 공공기관 간 담합의 산물이다. 수익성이 없다고 해서 공공기관에 무조건 맡겨야 한다는 논리는 곤란하다. 예컨대 철도공사에 보조금을 줘가며 시골 역사를 유지하기보다는 민간 버스 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주민의 교통권 보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공공기관 개혁은 현 정부에서 관심 밖이다.

△정부는 빚을 내더라도 사람을 더 뽑고 사업을 하라고 한다. 이렇게 발생한 적자를 ‘착한 적자’라고 하지만 과연 누구에게 착한 적자인가. 현 세대에게는 그럴지 모르겠으나 후대에도 착한 적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환경부 블랙리스트'사건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9일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건은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에 경종에 울렸다. /연합뉴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공공기관장 인선은 공모-임원추천위원회의 복수 추천-공공기관운영위원회 의결-주무 장관 제청-대통령 임명 순을 거친다. 문제의 핵심은 단계별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연례 공공기관장 경영 평가에서 기관장 해임 권고가 나왔다면 그를 추천한 임추위 위원(주로 사외이사)의 즉각 해임이 필요하다. 이들의 연임 불가 조항을 둬야 소신껏 후보자를 추릴 수 있다. 주무 장관이 공운위 의결 이전 단계에서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도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존중 차원에서 장·차관처럼 직접 인선하는 방안은 어떤가.

△어떤 정권이든 그런 방안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로서는 지금 인선 시스템이 너무 좋을 것이다. 아무 부담 없이 뜻대로 기용할 수 있으니까. 국무위원 인사도 국회 인사 청문회 때문에 청와대가 골머리를 앓지 않는가.

-공공 부문의 개혁 방향을 제시한다면.

△현 정부에서는 기대할 게 없지만 차기 정부는 공공기관의 기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핵심 원칙은 경쟁 도입이다. 민간과 경합하면서 잘하지도 못하는 수익 사업에서는 손을 떼게 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백화점도 하고 홈쇼핑도 한다. 석탄공사는 존치 필요성조차 의문스럽다.

-공공 기관 개혁은 행정부가 한다. 결국 정부 개혁이 선결 과제인데.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사회 통합과 국민 안전, 질서 유지 등의 분야에서는 정부 역할이 확대돼야 하지만 반대로 시장에 개입하는 일을 점점 줄여야 한다. 즉 경제·생산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성장은 자본과 인력 등 요소 투입과 생산성에 좌우된다. 하지만 요소 투입은 한계에 봉착했다. 기댈 것은 생산성 제고밖에 없다. 지금처럼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면 어림도 없다. 산업 관련 여러 부처의 기능부터 확 줄여야 한다.

박진 교수가 지난해 말 출간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표지. 국가 의사결정시스템과 행정부 개혁, 미래 과제 등 국가 개조론을 담았다.


-현 정부 들어 재정 건전성이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사상 최저인 금리는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았다. 국가 채무 비율이 200%를 넘는 일본은 나랏빚 갚는 데 예산의 20%를 쓴다. 우리나라가 당장 재정 위기를 겪을 상황은 아니지만 급증한 나랏빚이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행정부의 재정 남용을 막을 견제 장치 마련이다. 5년 단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인기를 좇아 재정을 남용하고 집권 여당의 이해를 반영할 유인이 크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예산 총액과 증가율을 국회가 결정하고 정부는 총량 범위 내에서 세부 예산을 짜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지난 4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을 평가한다면.

△현 정부는 해야 할 일과 그만둬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부터 없다. 지금처럼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하겠다는 ‘정부 만능주의’는 독약으로 돌아온다. 규제 개혁이 겉도는 것도 정부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모든 일을 그저 열심히 하려고 했을 뿐 그게 해야 할 일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이게 정책 실패를 불렀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착공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는 신한울 3·4호기(경북 울진) 건설 예정 부지./서울경제DB


-과도한 정부 개입에 따른 정책 실패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시장 개입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이 과도했다. 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감소하는데도 이를 무시한 채 임금만 인상했다. 탈(脫)원전도 마찬가지다. 5년 단임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못 된다. 탈원전 완료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사안이라면 국회로 넘겨 여야 합의 결과를 반영했어야 옳았다. 정파 간 합의가 없는 탈원전이 지속될지 의문이다.

-국민연금 개혁도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

△현 정부는 인기 없는 정책, 고통스럽고 이해 관계가 첨예한 사안은 피하기만 했다. 국민연금 개혁처럼 모두 다 싫어하지만 국가적으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미래 과제가 있다. 노동 개혁도 그에 해당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이런 데서 발현된다. 진영 논리도 강해져 이제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변화를 이루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현 정부만의 탓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변화 불능 국가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변화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 공공성 강화, 형평성 제고 등이다. 이는 미래를 대비한 구조 개혁과 거리가 멀다. 대부분 돈을 풀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돈 풀기는 쉽다.

-미래 과제를 미룬다고 해결되지 않는데.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는 성장 제고와 사회 통합이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4개의 모델이 있다. 하르츠 개혁을 성사시킨 독일은 경제 활력과 사회 통합을 모두 달성했다. 일본은 통합 측면에서 괜찮은 편인데 저성장이 문제다. 미국은 일본과 정반대다. 최악의 유형이 성장도, 통합도 안 되는 이탈리아다.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의 길을 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차기 정부는 갈라진 사회를 한데 묶고 국정의 방향타를 구조 개혁에 맞춰야 할 것이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행정고시 폐지하고 7급 공채 늘리자”…박진 교수의 ‘공무원 인사 혁신안’


박진 한국개발연구원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철밥통’으로 대표되는 공직 사회에 변화를 주려면 공무원 인사부터 혁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두 가지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첫 번째는 행정고시(5급 사무관 공채)를 폐지하고 7급 공채를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박 교수는 “소수의 정부 엘리트가 민간을 이끌던 시대는 지났다”며 “행정고시 출신과 7급 공채 출신 역량의 격차가 처우만큼이나 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공무원은 7급 출신보다 20년쯤 앞서 간다.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실·국장(1~3급)의 경우 차관으로 올라가지 못하거나 같은 부처의 고시 동기·후배가 상급자로 승진하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50대 초중반에 옷을 벗는 현실은 인재를 낭비하는 요인이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의 산하 기관 낙하산 논란도 곧잘 불거진다.

두 번째는 실·국장 자리를 전면 개방형 임용제로 바꾸는 방안이다. 개방형 임용제는 폐쇄적인 공직 사회에 활력을 높이고 공무원의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 정부 혁신 과제로 추진됐다. 원래 정부 안은 30% 개방이었지만 국회 통과 과정에서 20% 개방으로 줄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방형 직위의 공무원과 민간 출신 비율은 현재 6대 4쯤 된다. 박 교수는 “권한을 줄여야 할 곳부터 민간에 개방해야 하는데 대개 인기 없는 자리를 개방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일시 전면 개방은 충격이 크므로 점진적으로 확대하자고 했다. 박 교수는 “과장이 국장으로 승진하는 데 10~15년쯤 걸린다“며 “기존 행시 출신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그 기간을 유예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He is…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 및 KDI 국제정책대학원에 재직하며 정부 혁신과 미래 과제 등을 연구해왔다. KDI 기획예산처 행정개혁팀장을 맡아 공공 개혁 정책 수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국회미래연구원 초대 원장과 중도우파 지식인 네크워크인 안민정책포럼 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그의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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