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4대 그룹들이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대적인 미국 투자 계획을 내놓았으나 중국과의 관계를 두고는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에는 여전히 중국 시장의 비중이 더 큰 데다 미중 관계가 악화할 경우 중국의 보복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중국 역시 경제적으로는 ‘실리’를 중시하는 만큼 ‘제2의 사드 사태’ 등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한미정상회담의 일등 공신인 배터리 업계는 원재료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한 중국 리스크를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코발트와 리튬 등 배터리 소재는 중국뿐 아니라 호주와 남미 일대에서도 채굴되지만 산업용으로 쓰일 수 있는 형태로 정제되는 과정은 상당 부분 중국을 거쳐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산업용 희토류 시장의 80%가량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터리 원재료부터 소재까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최대한 내재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당장 배터리 원재료를 지렛대로 국내 배터리 업계를 압박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K배터리’가 선점해가고 있는 미국 시장은 CATL 등 중국 업체들이 진입하기 쉽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한미 경제 동맹이 중국에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중국 시장이 ‘아픈 손가락’인 현대차와 기아도 중국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중 관계 속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불거질 경우 중국 내 재도약에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 1~4월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2.6%로 전년(4.2%)보다 1.6%포인트나 하락했다. 지난 2017년 점유율은 4.8%에 달했다.
그런 만큼 현대차·기아는 중국 시장에서의 재도약에 갈증이 크다. 현대차·기아는 중국 현지 전략을 재정비해 중국 시장 재공략을 천명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특히 그룹 최초의 해외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 생산 판매 법인인 ‘HTWO 광저우’를 건설하고 중국의 수소 사회 전환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친환경차 시장인 중국은 현대차·기아의 미래 모빌리티 전환에 반드시 필요한 시장”이라며 “미중 관계가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 될 수 있어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도 중국 리스크를 경계하지만 첨예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먹이사슬에는 미국·중국·대만·한국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우리 기업들이 사실상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서다. 민간 연구 기관의 한 중국 전문가는 “화웨이 회장이 미국에 제재를 받으면서도 애플 스마트폰을 들고 기자회견을 할 만큼 중국은 경제 문제만큼은 실리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변수연 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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