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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앞바다 도자기, 송나라 상인의 고려 입국을 증명하다

[문화재의 뒤안길] 마도 해역의 명문 도자기

충남 태안 마도 해역에서 발굴된 묵서 명문의 중국도자기./사진제공=문화재청




충청남도 태안 마도 해역은 수중문화재의 ‘보물창고’ 로 고려·조선 시대 도자기를 비롯해 중국 도자기와 닻돌(닻을 물속에 가라앉히기 위해 매다는 돌) 등 국적과 시대가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처음 발굴된 당시 여러 유물 중에서도 특히 시선이 집중된 유물이 있었는데, 유약을 바르지 않은 바닥면에 먹으로 적은 글씨가 있는 도자기였다.

이런 종류의 도자기는 대부분 송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2008년부터 지금까지 100여점 이상이 발견되고 있다. 도자기들은 중국 남부의 푸젠(福建), 광둥(廣東), 장시(江西), 저장(浙江) 등 여러 가마에서 만들어졌으며, 한자로 된 글씨는 생산과정에서 쓴 것은 아니고, 만들고 난 후에 표기한 것이다. 글씨의 표기 방식은 먹으로 도자기 굽바닥의 위에서 아래로 임(林), 정(鄭), 양(楊), 진(陳) 등의 성(姓)씨에 중국 상인 집단을 의미하는 강(綱), 강사(綱司)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즉 ‘林綱(임강)’, ‘陳綱司(진강사)’ 등으로 표기 된다. 이 외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한자를 서명(署名)하듯 적은 것도 있고, ‘강(綱)’, ‘강사(綱司)’ 만 쓴 것도 있다.



한자는 주로 중국 송대 해외무역에 종사했던 상인집단을 나타낸 것인데, 유약이 없는 부분에 글씨를 쓴 것은 상인별로 상품을 표시하거나, 배에서 사용하던 개인 소유의 물품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사’ 등의 기록을 통해 송나라 상인이 배를 타고 고려에 들어온 것이 확인되는데, 11~14세기 초반까지 260년 동안 120여 차례 이상, 송나라 상인 5,000~7,000여 명이 고려에 들어왔다고 한다.

예부터 태안 마도 해역은 송에서 고려로 들어올 때 거치게 되는 항로에 위치한 중요한 길목으로 외국 사신, 관원들이 쉬어가는 객관(客官), 외국의 무역선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기항지(寄港地)로 알려져 있다. 송나라 상인들은 마도 해역을 거쳐 당시 궁궐이 있던 개경으로 가는 일정으로 왔을 것이다. 중국 기록에는 고려 왕성에 상선(商船)을 타고 온 푸젠 사람들이 수백 명이라고 전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는 고려와 송을 오가며 무역활동을 한 송나라 상인들의 실체를 입증하는 유물이다./이명옥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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