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신규 채용이 없으면 산학인턴 채용 협의 불가’라는 기아 노동조합의 엄포는 생산직 인력 감소로 지지 기반을 잃고 있는 노조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최근 현대차그룹 내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사무·연구직 노조의 결성 등으로 코너에 몰린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산학인턴은 6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자동차 회사 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생산 라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다. 채용은 공장별로 반기마다 진행되며 매년 약 300여 명을 뽑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산직 초임 90% 수준의 임금을 받고 우수 인턴으로 선정되면 정규직 채용에서 서류 전형이 면제되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하다.
기아 노조가 인턴 일자리를 볼모로 잡게 된 것은 정년퇴직으로 자연 감소하는 인력을 새로 충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 노조는 지난해부터 오는 2025년까지 정년퇴직 예상 인원이 7,266명에 달한다며 이에 따른 신규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의 한 고위 간부는 서울경제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몇년간 설비 보전이나 금형과 같은 특정 기술 전문직 외에는 신규 채용이 없었다”며 “산학인턴은 결국 제2의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적절한 신규 채용이 있어야 인력 자연 감소분을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 안팎에서는 노조의 기득권 집착이 취업 준비생과 같은 약자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규직 일자리와 무관한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차단한다는 이유에서다. MZ세대로 분류되는 기아의 한 직원은 “지난 2017년 정규직 노조가 자기 몫을 더 챙기기 위해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떼어냈을 때가 연상된다”며 “말로는 노동 약자를 위한다지만 회사와의 협상에서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더 약한 계층의 근로자를 희생시키는 꼴”이라고 말했다.
사 측도 노조의 요구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2030년까지 친환경차 비중을 40%로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 인력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아는 올해를 전기차 도약 원년으로 삼고 첫 전용 전기차 EV6를 시작으로 2026년까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전기차 7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가솔린·디젤차 중심의 라인업이 단계적으로 전기차로 전환되는 것이다.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동력전달장치 등 기존 내연기관 부품이 들어가지 않아 조립 단계에서 작업 수요가 적다. 전기차 전환이 가속할수록 인력 수요도 기존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현실적으로 대규모 인력 구조 조정이 불가능하다. 매년 반복되는 임협과 강력한 노사 협약 때문이다. 결국 완성차 업체에서 전기차 시대에 대응해 할 수 있는 인력 감축 방안은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 감소분에 기대는 것이 유일하다. 상황이 이렇지만 기아 노조를 비롯해 현대차 노조 등은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 시기인 만 65세까지 연장하고 근로시간도 기존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할 것까지 올해 임협 요구안에 넣었다. 사내 하도급의 정규직 전환도 신규 채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기아는 노사 특별 합의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2,387명의 사내 하도급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단기간에 많은 인원을 고용하면서 채용 여력이 약해진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아 노조가 세를 불리기 위해 채용·생산량과 같은 경영에까지 깊숙이 관여하는 것은 옳지 못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