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는 반도체 수급 불균형이 글로벌 제조업은 물론 각국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친 가운데, 하반기는 ‘전자산업의 쌀’로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부족 현상이 불거질 것으로 점쳐진다. MLCC는 스마트폰 뿐 아니라 노트북, 서버,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필수 부품으로 이번 수급 불균형이 제조업 전반에 끼칠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PC와 서버, 자동차용 MLCC를 생산하는 다이요유덴은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동제한 명령을 무기한 연장하면서 공장 가동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지난달 14일 공장을 재개한 다이요유덴은 최근 공장 가동률을 80%까지 올렸지만, 말레이시아 정부의 봉쇄령이 적어도 8월까지 이어질 전망이라, 단숨에 생산량을 원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또한 MLCC 생산에 필요한 크리스털 등을 공급하는 NDK와 앱손 등도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두고 있어 MLCC 전반에 수급 불균형이 빚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MLCC는 생산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삼성전기(009150)·무라타·다이요유덴·TDK·야게오 등 5곳에 불과하고 고사양 MLCC는 한국과 일본 기업만 생산할 수 있다. 극도로 제한적인 공급이 이뤄지는 시장이란 의미다. 또한 MLCC 생산은 최소 6주 이상이 걸리는 데다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펜트업 수요 탓에 공장 가동률을 최대로 끌어올려 대응해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업계에서는 설령 다이요유덴이 이번 봉쇄령으로 멈춰선다고 해도, 다른 기업들이 시장의 파이를 단기간에 빼앗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봉쇄령이 연장되기 전부터 MLCC 수급 상황은 상당히 타이트하게 관리돼 왔다”며 “주요 공급업체인 다이요유덴의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경우, 글로벌 MLCC 시장에 상당한 타격이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스마트폰과 IT기기용 MLCC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삼성전기나 무라타 등은 코로나19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지역에 기반을 잡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쇼티지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삼성전기는 한국과 필리핀, 중국에 무라타는 일본과 중국 등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한편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MLCC 제조기업을 조사한 결과 6월말 기준으로 대부분 60일 분에 해당하는 재고를 보유하고 있지만 고급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일본 기업들은 30일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말레이시아는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퍼지며 지난 6월 초 일일 확진자가 9,000명에 달할 정도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 6월 중순부터 강력한 봉쇄령에 확진자 줄었지만, 말레이시아 정부는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적어도 8월까지 필수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봉쇄령을 예고했다. 아울러 일일 신규 확진자 규모가 2,000명 아래로 떨어지고 인구의 40%가 백신 접종을 마치면 봉쇄 수준을 낮춰 일부 경제활동을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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