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인공지능(AI) 도입 열풍이 거세다. 모바일 뱅킹 등 기존의 비대면 서비스에 이어 각종 대면 서비스로 AI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 같은 변화에 금융 당국에서도 AI와 관련해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고 나섰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AI를 기반으로 불완전 판매 탐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입찰 공고를 냈다. 이 시스템은 은행 창구에서 AI가 은행원을 대신해 각종 상품 설명서를 읽어주고 고객과 은행원 간 대화를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것을 말한다. AI 딥러닝으로 고객과 은행원을 자동으로 구분해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주고 텍스트를 음성으로 합성한다. 이를 통해 은행원이 고객에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절차를 제대로 준수했는지, 불완전 판매 행위가 없는지 점검해준다. 불완전 판매 소지가 발견되면 자동으로 알림이 뜬다.
앞서 KB국민은행이 지난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전 지점에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 측은 “금융·디지털·AI 역량을 총동원해 불완전 판매를 차단하려는 것으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대비하려는 이유도 있다”며 “하반기 영업점에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또한 불완전 판매를 방지하기 위해 AI로 고객의 기존 거래 정보와 투자 상품 경험 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잠재적인 투자 성향을 진단, 확인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은행들이 AI를 활용해 금융 규제에 적극 대응하려는 행보인 셈이다.
은행원의 기초적인 업무를 AI로 대신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김현욱 전 아나운서의 모습을 한 AI 은행원이 예·적금 등 상품 설명을 하는 키오스크를 현 여의도 본점 AI체험존에서 연내 실제 영업점에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 방송에 AI 아나운서를 시범 도입한 데 이어 텍스트 기반의 AI챗봇에 AI로 구현한 은행원의 영상을 붙이는 ‘비주얼 챗봇’을 하반기에 선보일 계획이다. 하나은행은 대출 심사, 여신 관리 등에, 농협은행은 펀드 상품의 불완전 판매 사후 점검, 의심 거래 모니터링 등에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활용 수요가 계속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개별 금융사에서 AI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 요구하는 면면만 봐도 다양하다. 우리은행 등 다수의 금융사와 제휴를 맺고 AI 영상 합성을 개발하고 있는 정승환 라이언로켓 대표는 “일부 보험사에서 설계사 내부 교육을 목적으로 AI로 고객을 구현할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었다”며 “마이데이터가 활성화되면 금융 자산을 관리해주는 AI PB도 가능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금융 당국도 이에 발맞춰 AI의 윤리 원칙을 제정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금융위원회가 이날 확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 금융거래와 대고객 서비스를 적용한 모든 금융업권은 AI 윤리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윤리 원칙에는 회사별로 AI 활용 상황에 따른 서비스 개발, 운영시 준수해야 할 원칙, 기준 등이 포함된다. AI의 잠재적 위험을 평가, 관리할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 권한을 서비스 전 단계에 걸쳐 정의하도록 했다. 특히 AI의 의사 결정이 신용 평가, 대출 심사 등 개인의 금융거래 계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이에 대한 내부 통제와 승인 절차 등을 마련하고 별도의 책임자를 지정해야 한다. AI 학습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출처·품질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개발 과정에서 개인 신용 정보 오·남용이 없도록 정보보호를 강화하는 내용도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은 “AI 금융서비스를 통해 비정형·비금융 데이터 활용이 활성화되면 금융 데이터가 부족한 금융 소외 계층을 포용할 수 있게 되고 데이터 처리의 속도와 정확성이 제고되면서 금융거래 비용은 낮아지고 금융 중개기능의 효율성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