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체 회계법인의 평균 감사 시간이 전년보다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기적감사인지정제와 표준감사시간제 등을 골자로 한 신외부감사법 도입 효과가 본격화하면서 중소·중견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는 중소형 회계법인의 감사 시간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소기업의 감사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자산 규모가 작은 기업에 한해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를 면제해 중소기업의 회계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14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회계법인의 평균 회계감사 시간은 기업당 434시간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9년보다 10.43% 증가한 수치다.
빅 4(삼일·삼정·한영·안진)보다 중소형 회계법인에서 감사 시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빅 4의 평균 감사 시간 증가율은 5.68%로 전체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다. 2019년에는 빅 4의 평균 감사 시간 증가율이 22.96%에 달해 전체 회계법인(11.33%)의 두 배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증가 추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지난해부터 첫 적용된 주기적감사인지정제가 표준감사시간제와 ‘중첩 효과’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10월 금감원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220개사의 감사인을 지정했다. 빅4가 그간 감사를 맡아왔던 곳 중 상당수가 삼덕·대주 등 중견 회계법인으로 넘어갔다.
표준감사시간제도 힘을 더했다. 새 감사인이 처음 회계감사를 실시할 때는 일반 표준 감사 시간에 5~20%를 더한다. 새로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이 늘면서 전반적인 표준 감사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19 전후로 재무 상황이 나쁜 중소기업이 늘면서 감사인이 들이는 시간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현행 표준감사시간제는 당기순손실을 거둔 기업에 표준 감사 시간을 5~30% 더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감사 시간이 늘어나면 감사 보수 역시 증가한다는 점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을 주 고객으로 두는 중소형 회계법인에서도 감사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 경기 변동에 취약한 소규모 업체의 감사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자산 규모 1,000억 원 미만 소규모 기업들은 2019년 기준 감사 보수가 판매비와 관리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776%였다”며 “감사 보수 자료 입수가 가능한 2002년 이래 최대”라고 밝혔다. 연구개발(R&D) 비용이 판관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6배를 웃도는 수치였다.
당장은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의무화가 상장 중소기업의 회계 비용 부담을 키울 요인으로 꼽힌다. 자산 규모 1,000억 원 이상 5,000억 원 미만 기업의 경우 당장 내년부터 개별·별도재무제표에 대해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가 의무화되며 1,000억 원 미만 기업은 오는 2023년부터 대상이다.
해당 감사가 처음 실시되는 사업연도에는 표준 감사 시간의 30%를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표준 시간으로 더한다. 이듬해에는 35%, 그 이후에는 40%를 더하는 식이다. 내부회계관리제도 인프라 구축 비용도 크다. 중소기업 중에는 회계 전문가는 고사하고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중소기업에 한해서라도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를 면제할지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3월 매출액 1억 달러(약 1,100억 원) 미만이고 유동 주식이 7,500만 달러(약 862억 원)를 밑도는 기업을 재무보고내부통제(ICFR) 감사 면제 대상에 추가한 바 있다. 이들 기업 중에는 회계 전문 인력이 부족한 사례가 많아 단순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표준감사시간제 도입으로 늘어난 기업 부담과 회계 투명성 개선 성과를 분석해 제도 개선 필요성을 검토할 때”라며 “내년부터 중소기업에 새롭게 적용되는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의무화 또한 미국 등 회계 선진국이 중소기업을 예외로 인정하는 이유 등을 분석해 시행에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도 코로나19발 경영난을 고려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시행 시기를 1년씩 연기하는 외감법 시행령 개정안을 이날 입법 예고했다.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원래 내년부터 연결 기준 내부회계관리제도 외부 감사를 받았어야 했으나 이번 개정안으로 이 시기가 2023년으로 미뤄졌다. 금융위는 “연결 내부회계관리제도 구축 소요 시간,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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