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5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로 다시 한번 동결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3월 1.25%에서 0.75%로 0.50%포인트 내렸고, 지난해 5월 0.50%로 0.25%포인트 추가 인하한 뒤 아홉 번 연속 동결입니다. 지난해 7월·8월·10월·11월에 이어 올해 1월·2월·4월·5월에 열린 여덟 번의 금통위 회의에서는 모두 만장일치 결정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고승범 금통위원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고, 이주열 한은 총재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이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한은은 지난 6월부터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올려 이례적으로 완화적이었던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점차 확대하고 있습니다.
당초 시장에서는 코로나19 4차 확산으로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봤습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하루 신규확진자 수가 1,615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신규확진자가 1,500~1,600명대를 기록하면서 수도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4단계까지 높아진 상황입니다. 강력한 방역대책에 자영업자 피해는 급격히 가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은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경제 성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그렇기에 지난 5월 내놓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 4.0%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과거 확산기와 달리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고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경제주체들의 학습효과가 높아지고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 회복을 견인 중인 수출과 투자 흐름도 좋다는 판단입니다.
그러면서도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인한 금융불균형 누증을 더 크게 걱정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코로나보다 가계부채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은이 말하는 금융불균형은 위험 선호가 강화되면서 나타나는 과도한 레버리지 확대와 자산가격의 고평가입니다. 이 총재가 “금리 인상이 늦으면 늦을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금융불균형 상황을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41조 6,000억 원 증가했는데 이는 상반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또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한은이 자체 계산한 우리나라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112.7%로 미국(106.6%), 영국(106.5%), 일본(99.5%) 등 주요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고 이 영향으로 가계부채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한은이 금융불균형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만으로는 ‘빚투(빚내서 투자)’ 행진이 중단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는 “최근 경제 주체들의 위험 선호가 지속하면서 차입에 의한 자산투자가 이어졌다”며 “건전성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저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한 거시건전성 규제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승범 위원이 코로나 대유행에도 소수의견을 낸 이유도 2주 뒤 공개될 의사록을 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금융불균형을 크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총재를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금통위원을 맡고 있는 고 위원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거친 관료 출신입니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등을 몸소 겪은 만큼 평소 금융불균형 문제에 관심이 큽니다.
금융불균형과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것이 물가입니다. 올해 들어 물가에 대한 한은 입장은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압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요약됩니다. 지난해 국제유가 급락 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있기 때문에 물가 상승은 일시적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결정문에서는 해당 문구가 삭제됐습니다. 그러면서 5월 예상한 물가 전망치(1.8%)를 상회해 당분간 2%대 초중반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봤습니다. 초중반이라면 2.1%나 2.2%보다 높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은의 정책 목표가 물가안정인 만큼 물가 상승이 가파르다면 금리 인상에 힘을 실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은 고승범 위원 1명만 냈지만 다른 금통위원도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이 총재가 오는 8월부터 금리 완화 정도의 조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금리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는 금통위원들이 많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회의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거의 다수의, 대부분의 위원들이 통화정책 운영에 있어서 금융불균형 해소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때라는데 뜻을 같이 했다”고 힌트를 줬습니다. 익명으로 작성된 5월 금통위 의사록을 봐도 금리 정상화를 말하는 금통위원은 적어도 4명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정부와 국회도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만나 정책 조화 방안을 논의하면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여기에 국회 기재위 임시회의에서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강조했는데 여야 의원 모두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금리 인상으로 부담이 가중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대책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윤후덕 기재위원장도 물가 상승보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한 국민 고통이 더 크다며 한은과 기재부가 정책 균형점을 조정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렇다면 한은은 기준금리를 어느 정도 올려야 금융불균형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걸까요. 구체적인 인상 시기나 수준은 알 수 없지만 올해 금리 인상을 시작한 뒤 경기 회복 상황에 맞춰 지속적으로 인상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총재는 “0.25%포인트나 0.50%포인트만으로 금융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며 “금리 인상이라는 것이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경제 성장이 내년 후년 계속 지속된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 금리는 정상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8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4.0% 이상으로 올릴 경우 당장 다음 달 인상도 가능하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코로나19 4차 확산에도 경제가 강하게 반등할 것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다만 좀 더 신중하게 볼 필요도 있습니다. 8월 인상이나 연내 2회 인상이라는 해석은 ‘한두 번 올려도 긴축이 아니다’라고 한 총재 발언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총재는 지난 16일 국회에서 횟수보다는 연내 인상을 시작하겠다는 말에 힘을 실었습니다. 그는 “너무 서둘러서도 곤란하고 늦어서도 안 된다”라며 “얼마 전까지 연내 금리 인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시장에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시작하는 시점은 코로나 때문에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질문과 이 총재의 답변이 겹쳐서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한두 번이라기보다는 연내 시작을 할 수도 있겠다”고도 했습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은 통화정책 정상화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인상 시기나 인상 폭 등은 코로나19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며 “코로나 재확산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지표들이 견조하게 버티는지,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등 경제주체들의 심리지수가 훼손되지 않는 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