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목요일 아침에] 평화협정 17개월 만에 뒤바뀐 탈레반 세상

아프간 사태는 월남 사태와 판박이

평화협정·미군철수 후 급속히 붕괴

文정부 집권후 北과의 경계 허물어

대북안보 의지없인 우리도 장담 못해





이슬람 무장 단체 탈레반이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입성하자 도시가 아비규환에 빠졌다. 카불의 관문인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은 아프간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겁에 질린 주민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숨을 죽였다. ‘아프간 여성 인권의 상징’인 최연소 여성 시장 자리파 가파리는 “나는 (카불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1975년 4월 남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사이공이 함락됐을 때와 흡사한 장면들이다. 2020년 미국과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한 지 1년 5개월, 올해 4월 미국이 아프간 미군 철수 방침을 발표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중동에서 이집트를 중심으로 시도된 아랍민족주의가 수그러든 후 이슬람주의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북부, 소아시아, 이집트, 아라비아, 이란 일대까지 장악했던 옛 이슬람제국의 영광을 꿈꾼다. 이슬람주의자들은 1979년 이란(시아파)에서 혁명을 통해, 1996년에는 아프가니스탄(수니파)에서 탈레반을 통해 국가 권력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2001년에는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항공기 동시 다발 자살 테러를 벌이기도 했다. 탈레반은 당시 빈 라덴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해 미국의 침공을 받아 퇴각했지만 20년 만인 올해 정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슬람주의도 인권·법치·자유·시장 등을 토대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세계 질서를 거스를 수는 없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공산주의 아래에서는 킬링 필드, 가난과 빈곤, 독재, 사회 전체의 불량 국가화라는 네 가지 특성이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탈레반의 아프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조짐이 보인다.



무엇보다 아프간 사태는 베트남 사태와 판박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두 곳 모두 이데올로기와 싸웠고, 기존 민간 정부가 배제된 가운데 평화협정이 체결됐으며, 미군이 철수한 후 급속히 무너졌다. 공산주의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우리와 닮은 점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북한과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군은 우리의 적’이란 표현을 삭제했다.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서는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용어를 없앴다. 세계 최악인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북한인권법이 시행됐지만 북한인권재단 설립은커녕 법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한마디 하자 여당은 ‘대북전단 금지법’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컴퓨터 도상 훈련으로 전락한 한미 연합 훈련마저 규모를 더 줄였다. 이러니 적에 대한 개념이 무뎌지면서 군에서 성폭행, 경계 실패 등 온갖 기강 해이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70여 년간 대남 적화통일이란 목표를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6·25전쟁을 일으켰고 청와대 습격을 위해 무장 게릴라를 보내는 등 수많은 도발을 일삼았으며 결국 핵무기까지 만들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공산 세력의 코앞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해 한미 동맹을 토대로 경제를 일으켰고 민주화를 이뤄내며 민주주의 선진국 모임인 D10에 초대 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붕괴된 남베트남이나 아프간과는 다른 점이 많다. 미국이 중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라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도 여전히 높다.

하지만 한번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게 안보다. 자유와 민주주의·조국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없다면 우리도 장담할 수 없다. 아프간 정부군 병력이 30만 명으로 탈레반(7만 명)의 4배가 넘는데도 겨우 4개월 버텼다. 미군은 항상 그랬듯이 여론이 돌아서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 4대 강국으로 둘러싸인 우리 실정을 고려해 한미 동맹을 최대한 잘 관리하고 ‘고슴도치 전략’으로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강한 자주국방력을 키워야 한다. 평화협정이 평화를 담보해주는 것이 아니란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평화협정에서 떼어낸 종전 선언도 맺어서는 안 된다. 나중에 평화협정을 맺게 되더라도 당사자로 직접 참여해 우리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스스로 지키려고 하지 않으면 하늘도 우리를 돕지 않는다. 천고의 진리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