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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24시]아프가니스탄과 美 '자유주의 패권전략'의 종언

◆김재천 서강대 정치학 교수

병 고칠 의지가 없을땐 백약이 무효

아프간 애초부터 회생 불가능했지만

美 '동맹국 소외' 철군 방식은 실패

'다음 타깃' 對中전략도 실체 안보여

김재천 서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조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종언을 의미한다. 탈냉전 이후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를 지구적 차원으로 전파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빌 클린턴 전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확산이 미국의 이익과 직결돼 있다고 주장하며 구소련 연방과 중남미 그리고 중국을 대상으로 자유주의 ‘확산(enlargement)’ 정책을 추진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소말리아에 군사적 개입을 감행했고 통치 불능 상태의 ‘실패 국가(failed state)’에서는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을 주도하기도 했다. ‘클린턴 지우기(Anything But Clinton)’를 하던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도 9·11 테러를 당한 후 자유주의 패권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이라크에서는 후세인 정권을 축출한 후 국가 재건을 공언했다.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민주주의와 개방경제가 잘 정착된 국가들은 갈등을 겪더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자유주의 평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국가 건설이 필요한 이유는 실패 국가가 테러리즘과 내전의 온상이 된다는 주장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진단은 틀리지 않는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치른 적이 드물고 테러 조직은 주로 중동과 아프리카의 실패 국가에서 발호했다. 진단은 옳았는지 몰라도 미국의 처방은 유효하지 않았다. 권력의 중앙집권화가 시급한 실패 국가에 3권분립과 자유선거를 먼저 처방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스스로 병을 고칠 의지가 없는 환자는 좋은 의사를 만나도 백약이 무효일지 모른다. 헨리 키신저는 현대화를 거부하고 권력의 중앙 집중을 혐오하는 부족국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가 건설은 난망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환자의 회생(국가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졌는데도 미국은 비싼 약을 계속 투여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는 미련이 없었지만 아프가니스탄 국가 건설은 포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군 3만 명을 증파(surge)해 임기 중 파병 미군이 11만 명에 이르며 최고치를 기록했다.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책 제목처럼 아프가니스탄은 “오바마의 전쟁(Obama’s War)”이 돼버렸다. 아프가니스탄 국가 건설은 무모한 짓이라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싸워서 이기겠다(fight to win)”며 미군 4,000명을 증파하기도 했다. 전임 대통령들이 아프가니스탄 ‘폭탄 돌리기’를 했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불평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 동맹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중국은 “다음은 너희 차례야”하며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바이든은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는 대중 정책과 인도태평양으로 국력을 전환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철군은 불가피했다고 한다. 변명만은 아니다. 바이든은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독하게 중국을 때릴 것이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정치·경제·외교·군사적 관여를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면 동맹국은 ‘방기(放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방기의 위험’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미국의 독선과 무능함이다. 동맹과 협의를 강조해온 바이든은 약속과 달리 철군 논의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을 소외시켰다. 바이든의 잘못은 철군이 아니라 철군의 잘못된 집행이었다. 백악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4월부터 철군 방법과 시점을 놓고 30여 차례나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가 이 모양이니 미국의 정책 능력이 미덥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탈냉전 이후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추진하며 보여줬던 경직성이다. 미국의 이상은 숭고했지만 ‘무한 도전’을 하며 국력을 소진한 결과, 정작 ‘중국’이라는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함께 자유주의 패권 전략은 종언을 고했다. 미중 경쟁 시대에 바이든의 대(大)전략은 무엇일까.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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